[문학공장⑭]이성주 작가

왜? 갑자기 자살 이야기를…

지난 2005년 주목할 도서 2위에 오르며 화제가 됐던 책 ‘엽기 조선왕조실록’. 작가 이성주는 이 책을 통해 대중적 역사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가는 이후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실록’, ‘어메이징 조선랭킹실록’, ‘아이러니 세계사’ 등 대중적인 역사 부문 책을 잇달아 펴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과거 대신, 곧 역사가 될 지금 이 순간의 한 단면에 주목했다. 신간 ‘완벽하게 자살하는 방법-그런데 왜 죽느냔 말이다(유리창刊)’는 그 결과물이다.

줄곧 역사를 이야기했던 저자가 갑자기 ‘자살’을 꺼내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물었더니, ‘노숙이 그 시작’이란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노숙인들을 통해 ‘남’이 아니라 ‘나’를 중심에 세우는 가치와 방법을 익혔다

“돈 벌어 ‘진짜’ 글쟁이 되고 싶었다”

이성주의 ‘화려한 전적’을 보노라면 역사에서 자살으로의 갑작스러운 소재 변화는 놀라울 일도 아니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군사 분야 논객, 역사 칼럼니스트, 전시 기획자 등 문화 전반을 종횡무진 해왔다.

“2000년대 초반 서울 홍대 부근의 한 그래피티(graffiti)가 충격적이었어요.

‘그림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낙서처럼 새겨져 있더군요. 그 순간, 그렇다면 나는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목표를 세웠죠.”

그가 수년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글을 발표한 이유이기도 하다. 잠깐, 지난해 2월 사망한 최 모 시나리오 작가가 오버랩 됐다. 당시 최 작가가 자택에서 생활고와 지병에 숨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예술인들의 처절한 삶이 불거졌었다.

“전업 작가 중 상위 1%를 제외하면 연봉이 몇 백 만원도 채 안 되는 것이 현실이에요. 신문, 사보, 만화스토리, 전시기획, 극본 등 닥치는 대로 썼어요. 정말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요.”

고리타분한 역사를 ‘엽기’와 ‘아이러니’ 등의 비틀기로 기록한 역사서들이 독자의 호응을 얻었고 각종 매체에 연재하는 글도 인기를 끌었다.

강연자로도 나서며 ‘진짜 글’을 쓰기 위한 목표 지점 9부 능선에 다다른 듯 했다.

하지만 어렵게 모은 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집필 장소로 양평의 한 전원주택을 사들였는데, 사기로 몽땅 날린 것이다. 그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목표를 잃어버린 채 방황했다.

작가는 어둡고 힘겨웠던 그 시기를 이번 신작의 시작점이라 술회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 뭔지 아세요? 바로 ‘남’이에요. 남들처럼, 남 때문에, 남들  만큼 등등. 제가 고통스러운 이유가 바로 ‘남의 기준’에 맞춰 사는 내 자신이 진짜 문제더군요.”

그는 텔레비전 속 15초 광고가 나의 현실이길 바라는, 커튼만 열면 보이는 주변 사람들의 삶과 내 경제적 수준이 다르지 않길 소망하는, 최소한 30평형대 아파트에 중형 자동차 정도는 소유한 중산층을 꿈꾸는 삶에서 벗어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찾은 곳이 길바닥이었다.

“나부터 정확히 알고 죽음을 선택해라”

그렇게 작가의 노숙생활은 시작됐다.

신문 연재 칼럼 원고료로 소주 몇 병 사들고 나서면 노숙자들의 영웅이 됐다고 너스레를 떤다. 무엇보다 그는 노숙인들을 통해 ‘남’이 아니라 ‘나’를 중심에 세우는 가치와 방법을 익혔다고 한다.

작가 말대로라면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한 훨씬 의미 있는 것들이다.

“노숙인 사회를 지켜보니 정부와 지자체, 종교단체, 일반인 등 의외로 손만 뻗으면 도와주는 곳이 많더라고요. 결국 문제는 자기 자신이었어요. 남의 기준 때문에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억지로 참으면서 문제는 더 곪고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죠.”

결국 작가는 이번 작품 ‘완벽하게 자살하는 방법’을 통해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가치를 확인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던 게다.

극단적인 분위기의 제목을 보고 ‘자살을 종용하는 것 아니냐’며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에 책은 ‘죽을 힘으로 살자’거나 ‘자살은 죄’와 같은 진부한 교훈과 공허한 주장 대신 저자의 절절한 경험에서 길어 올린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나열한다.

혹자는 다소 극단적인 분위기의 제목을 보고 ‘자살을 종용하는 것 아니냐’며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살을 선택하기 전 ‘죽을만한’ 가치가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 보라는 일침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살률 높은 대한민국에서 살아야만 하는 내 몸의 가치를 매길 수 있도록 근거자료를 제시하고, ‘이 세상 모든 이가 가진 고통의 총량은 같다’는 치유의 말을 전한다.

책은 자살에 얽힌 사회적 정보를 담고, 독자가 자신과 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심리를 분석하며, 읽는 이가 자신을 평가하고 유서를 써보도록 유도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인문서이자 심리서로 분류되는 이유다.

역사에서 현대사의 한 기록이 될 이 시대 자살로 글의 소재를 넓인 이 작가의 다음 이야깃거리가 궁금했다. 엉뚱하게도 ‘연애의 기술’ 지침서와 ‘불륜’을 소재로 한 소설이란다.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사랑이야기’라면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을 텐데, 역사에서 자살로 향했듯이 또 다시 생뚱맞다.

노숙생활을 했던 그 때처럼 여전히 ‘방황기’를 겪고 있지만 행복하다는 이 작가. 그의 다소 엉뚱한 행보가 치열한 하루를 버티는 우리에게 살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제시하는 글로 귀결되기를 응원해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며 책을 뒤적거리다 그가 내내 반복한 말이 한 페이지에서 도드라진다.

“찾아라. 그리고 울어라. 우리 사회가 삭막해 보이고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찾아보면 당신의 울음을 들어줄 사람들이 꽤 많다. 찾아서 울어라. 그러면 당신에게도 희망이 찾아온다.”(p.217)

글 _ 류설아 기자 rsa119@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