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우리 전통팽이로 흥겨운 가족문화를!

일본의 어린이 관련 학회에 초청된 적이 있었다. 학술대회 종료 후 일본학자에게 일본 전통문화 박물관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나고야에 있는 조그만 팽이박물관을 안내했다. 여러 나라의 팽이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일본의 팽이는 손톱만한 것에서부터 아기 머리만한 크기, 그리고 장식품으로 써야 될 것 같은 예쁜 색상과 다양한 디자인의 팽이들이 있었다. 아동학 학자로서 우리나라 어린이 전통놀이를 세계 무대에 내놓으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그 순간 ‘졌다. 팽이에 한해서는 일본에 졌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문득 내 자신에게 ‘팽이를 개발 안했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너는 우리 전통 팽이 한 가지라도 잘 돌릴 수는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도무지 전통팽이를 제대로 돌려본 경험 없었다. 국립박물관 마당에 으레 놓여있는 민속놀이 3종 세트인 팽이, 굴렁쇠, 투호를 한 번 씩 시도해 보곤 했었지만, 팽이란 놈 돌리기는 늘 실패였다. 초라한 듯도 하고 종류도 별반 없고 현대화되지도 못한 것이지만 우리 것이니 사랑해주어야지하는 마음으로 어느 날 팽이 돌리고 치는 것을 한참 해보았다. 아! 그런데 이 팽이 돌리는 것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손바닥으로 잡아 일단 돌려놓고 채로 쳐야하는데 있는 힘껏 돌리면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져 나가 벽에 부딪치고, 살살 돌려야 되나 해서 살살 돌려보면 피죽도 못 먹은 듯 한 바퀴도 돌지 못하고 누워버린다. 무조건 크고 무거운 팽이가 무조건 잘 도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너무 작고 가벼워도 팽이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과학원리 느끼게 하는 창조적 놀잇감

한국인의 의무감 비슷한 마음으로 치기 시작했는데 땀이 줄줄 나는데도 팽이치기는 계속 이리저리 궁리를 하며 다양한 방법을 써보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원리가 금방 터득이 되는 것이었다. 늦둥이 아들하고 이리저리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도 뒤져보니 팽이가 스마트폰, 잠수함, 비행기, 인공위성, 미사일 그리고 로봇 등 최첨단 과학 기계에 들어가 나침반 역할도 하고 균형을 잡는 일도 하는 것을 알았다. 팽이는 지구의 자전 공전, 원심력, 관성의 법칙 등의 물리과학 원리를 몸으로 느끼게 하는 놀잇감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팽이는 나무로 깎아 만든 일명 말팽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삐죽하여 양쪽으로 다 돌아가는 장구팽이, 주사위처럼 썼던 숫자팽이, 숯불을 넣어 돌리는 화로팽이, 바가지나 질그릇 깨진 조각으로 만든 바가지팽이와 사금파리 팽이, 도토리팽이, 나무껍질팽이, 학자가 될지 부자가 될지 전문기술자가 될지를 예측해보는 문자팽이 등 그 소재와 활용의 다양성은 끝이 없는 정도이다.

또한 우리 전통팽이는 나무나 바가지를 이리저리 깍고 다듬어가며 돌려보고 다시 다듬으며 과학적이고 예술적인 과정을 거쳐 완성해가는 창조적 놀잇감이었다. 낫이나 칼로 나뭇가지를 툭툭 쳐 만든 손맛이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팽이들을 깊이 들여다보노라면 그 질박함 속의 기막힌 조형미는 우리 선조들의 예술적 문화적 수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소재와 활용의 다양성 끝이 없을 정도

현대의 신소재인 플라스틱 팽이들은 자연친화적이지 못하다. 또한 장식성에 치중한 팽이는 예쁘긴 하지만 몸과 마음의 흥을 마음껏 발산하는 놀이 소재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어떻게 하면 힘 안들이고 자동으로 돌릴까를 고민해서 만든 자동화된 팽이는 놀면서 터득할 수 있는 많은 지혜와 지식을 가로막는다. 집 앞의 돌맹이, 공원의 나무껍질, 당근과 오이도 모두 창의와 과학적 사고를 끌어내는 돈 안드는 좋은 팽이소재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재미있고 과학성·예술성·창의성이 녹아 있는 놀잇감인 던지기팽이, 치기팽이 등 우리 전통팽이로 유익한 가족 놀이 문화를 누려보자.

문미옥 아해박물관장·서울여대 아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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