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자급률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전년보다 5%포인트나 떨어진 22.6%다. 이는 해당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1970년 80.5%에서 1980년 56.0%, 1990년 43.1%, 2000년 29.7%로 계속 낮아졌다. 지난해 품목별 자급률은 쌀 83.0%, 보리쌀 22.5%, 밀 1.1%, 옥수수 0.8%, 두류 6.4% 등이다. 태풍 피해가 큰 올해는 식량 자급률이 지난해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 초 농림수산식품부가 국회에 제출한 가장 최근 자료다.
농림수산식품부의 2020년 식량 자급률 목표가 32%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식량안보에 적신호가 이미 10여년 전에 켜진 셈이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 몰아닥친 극심한 기상재해는 식량 안보와 식량 주권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케 하는 계기가 됐다.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식량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상상만해도 섬뜩하다. 그런 상황은 이미 지난 2008년 3월 현실로 드러났었다. 국제 쌀값의 기준이 되는 태국산 쌀값이 t당 760달러로 두달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뛰었고, 곧 1,0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당시 세계 2위 쌀 수출국이던 인도는 쌀 수출 하한가를 t당 650달러에서 1,000달러로 올린 후 며칠 뒤 아예 중·단립종 쌀의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먼저 깨달은 나라는 영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대륙봉쇄령으로 식량난을 겪었던 뼈아픈 경험이 있어 농업 자립에 심혈을 기울여 곡물을 수출할 만큼의 생산력과 경쟁력을 갖추었다. 특히 영국은 최근 국제 유가 폭등과 함께 곡물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자 2010년 1월 발빠르게 ‘식품 2030’이라는 정책을 내놓았다. 영국의 농업과 식품산업은 영국 제조업 중 가장 큰 산업에 속한다. 산업 규모가 800억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136조원에 이르고, 종사자만 해도 360만명에 달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들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국가는 위기에 처했다. 때로는 정권이 무너지는 경우까지 있었다. 2007~2008년 카메룬·멕시코·인도네시아 등 30여개국에서 발생한 시위나, 2011년 초 튀니지·이집트·리비아 등을 휩쓴 재스민혁명 등은 모두 식량 부족 문제가 직·간접적인 원인이었다. 해마다 식량 자급률이 낮아지는 우리나라에 이러한 사태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남아 돈다’던 쌀마저 지난해 자급률이 83%까지 떨어졌고, 국제곡물가격이 폭등하면 미국·캐나다·브라질·호주 등 곡물 수출국은 언제든 인도처럼 수출 금지를 취해 국내 식량 확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문제는 정부다. 식량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농업개발,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성과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국가곡물조달시스템의 경우 의욕만 앞섰을 뿐 미국에 수출 엘리베이터를 확보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해외 농업개발사업도 지난 4년간 946억원을 쏟아부어 곡물을 확보했다지만 국내로 반입된 곡물은 0.4%에 불과하다. 대부분 곡물이 사업에 참여한 국내 기업들이 현지에서 판매해 이윤을 챙기고 있어 국내 곡물가격 안정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다.
해외에서 곡물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내 생산기반을 확충하는 일이 선행돼야 하는데 생산기반 확충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농지가 절대 부족하다. 정부가 목표로 정한 2020년 곡물자급률 32%를 달성하려면 적어도 175만㏊의 농지가 필요하지만 각종 개발사업으로 농지가 갈수록 줄어 2020년엔 160만㏊도 못미칠 공산이 크다. 이렇게 우리나라 농정 상태가 문제투성인데 제18대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인사들이 농업 정책을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쿤둥하게 여긴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참 큰일 나게 생겼다.
임병호 社史편찬실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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