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일수록 종합검진은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병을 조기 발견하거나, 취약한 신체부분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선진국 사람들은 장수한다.
도시도 사람의 신체구조와 같다. 공원은 신체의 허파에, 도심은 심장, 도로는 혈관 등 도시공간을 몸에 비유하는 것처럼, 도시도 건강한 삶터를 지속하려면 전문가의 종합검진이 필요하다. 어느 지역이 건강하고, 취약한지, 종합적으로 진단하여 지속가능 도시로 계획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도시는 지자체마다 선거를 위해 정치인들이 지역적으로 진단하고 공약을 발표하고 그것이 바로 도시 전체 계획에 편입되어왔다. 신체로 비유하면 의사의 검진도 없이 환자가 병이 난 것 같다고 하니, 그냥 선심으로 수술해 주겠다거나, 약을 처방해 주겠다는 식이었다. 아니면 지자체의 힘 있는 행정가가 외국의 어느 도시를 가보니 매력적으로 보여 우리도 그렇게 만들자고 한 결과들이다. 이것은 옆집 사람이 성형해서 미인처럼 보이니, 너도나도 비슷하게 성형하는 것처럼 도시도 성형수술이나 해 온 것과 같다. 그래서 전국의 도시가 개성 없이 모두 비슷한 모습이거나, 어떤 시설은 과잉공급 되었다.
종합적 진단으로 도시계획 해야
도시는 계획에서 실행까지 5년에서 10년이 걸리고, 실행 후 완전한 기능과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향후 10년 이상이 더 걸린다. 우리 도시는 지자체선거와 맞물려 미래계획이 수시로 변경되니 계획이 있어도 실효성이 없다. 소명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전문가도 없다. 다행히 최근 지자체마다 공공건축가를 선발하여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개인 용역이 많아 일이 바쁜 전문가는 공공봉사에 쓸 시간이 없다. 경험이 많지 않은 전문가는 공공건축가가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다.
사람들은 신체가 탈이 나서 수술을 받아야 할 때는 몇 군데 병원을 찾아다니며 확인한다.
그런데 도시를 관리하면서, 거주자들을 이주하게 하거나, 산업구조의 변화로 삶의 방식을 달리 해야 하는 대수술에는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목소리가 큰 주민들의 요구와 선심성 행정만 작용되어 왔다. 아니면 다음 선거철이 될 때까지 계획을 의도적으로 유보하기도 한다.
도시의 건강도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된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다양하면서도 세부전공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받아 총체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도시의 건강이 지속될 수 있다.
도시가 가진 지리적 조건과, 인구구조와 산업경제의 체질 변화를 정밀 진단하고, 어쩔 수 없이 과잉 공급된 불필요한 시설은 용도를 변경하여 재활용하고, 도시 정비 계획은 급한 것부터 순차적으로 실행계획을 세우고, 차세대시민을 위해 새롭게 도입해야 할 시설은 무엇인지 미래도시를 기획해야 할 시점이다. 몸에 이상신호가 오면 병원을 찾듯, 경기가 침체일수록 관리계획을 재점검해야 한다.
건강도시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문제는 이러한 진단과 기획단계에 예산을 할애하지 않는 행정 관례에 있다. 이는 병을 치료하지 않으니, 건강검진 단계에서는 의료비를 지불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무료나 저렴한 용역비를 지급받으며 수행하는 일은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보편적 내용과 아이디어만 제공된다. 건강검진에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듯이 시민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도시를 위한 진단과 기획단계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아낌없이 투자해야 할 시점이다.
김혜정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 한국여성건설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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