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에서 놀자]<13>양평문화원, 전통혼례지도자양성과정

무료로 배워 아르바이트까지 실버수강생들은 즐거워

“오늘 하루만 신부 빌려준 거지. 우리 마누라 다리 아프니까 적당히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고!”

“아 그 양반, 자기 신부라고 엄청 챙기네(웃음). 그래도 순서대로 할 건 해야지.”

부인을 빌려줬다면서 힘들까 봐 챙기는 남편과 한 자리에서 난데없이 다른 남자를 신랑으로 맞으면서도 수줍게 웃는 신부, 이 두 사람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자못 진지한 사람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대화와 상황이 왁자지껄하게 펼쳐지는 이곳은 어디인가. 양평문화원(원장 장재춘)이 올해 처음으로 진행하는 강좌 ‘2012전통혼례지도자양성과정’의 수업 풍경이다.

▲ 노년층 겨냥 강좌, 일거양득

지난 11일 오후 4시 양평문화원의 ‘2012전통혼례지도자양성과정’ 수강생은 한껏 들떠 있었다.

본보 취재진의 방문을 알고 있었던 터다. 이미 2시간여 전부터 평소와 달리 전통복장을 갖춰 입고 사진으로 연습해왔던 음식을 마련했다. 자신이 배운 것을 취재진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열정은 높은 가을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특히 올 상반기부터 지금까지 이 강좌의 심화반을 2번이나 함께 들은 수강생들은 ‘취재가 있는 특별한 날 아내를 빌려줄 만큼’ 돈독한 관계를 자랑했다.

앞서 양평문화원은 가례해설전서교육과 혼례, 상례 등을 가르치는 강좌를 진행해왔다. 지난해에는 이를 발전시켜 실습하고 직업 현장에도 투입될 수 있는 전통혼례지도자양성과정을 개설한 것이다.

기존에 이론으로만 익혔던 실버 수강생이 대거 몰리면서 두 번의 심화과정에 40여명이 청강하고 있다.

수강료가 무료인데다 배우고 나면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고 전통혼례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로도 뛸 수 있으니 그 인기가 높다고. 

그래서인지 부부참여자도 2쌍이나 있다. 부인이 먼저 배운 후 남편을 데리고 오거나, 남편이 먼저 배운 후 부인과 함께 오거나 참여과정은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들 부부는 새로울 것 없는 노년의 새로운 대화주제가 생겨 집에서 애정 한가득이란다.

집에서 절하는 법이나 차례상 차리는 방법 등을 배운 그대로 실천하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알려주면서 소원했던 가족들이 돈독해지는 효과도 맛봤다고 거듭 자랑이다.

수강생 천영숙(60)씨는 “1972년도에 시집갈 때 족두리를 쓰고 가마타고 전통혼례를 치렀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각 절차의 의미를 배우면서 자긍심도 생겼다”며 “전통적인 부분을 확실히 보여주려고 쪽 머리를 할 수 있도록 몇 달간 머리를 길렀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모든 여성 참가자 머리에는 옥빛 비녀가 꽂혀 있다. 이 머리 스타일을 하려고 ‘임 오길 기다리며 내내 우는 소쩍새처럼’ 머리를 길렀다고 이구동성이다.

한정아 강사는 “수강생 대부분 50~60대여서 전통 혼례 과정을 외우고 반복적으로 절하는 등의 실습이 힘이 들 텐데 그 열의가 대단하다”며 “가족 구성원이 각각의 삶이 바빠 ‘밥상머리 교육’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명절 때라도 여기서 배운 것을 자녀에게 가르치면서 새로운 대화거리가 생겼다고 좋아하는 모습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평문화원은 한문서예반, 한글서예반, 풍물반, 전통요리반(전통음식과정, 떡·한과과정), 민요반 등의 전통적인 부문의 강좌를 여럿 진행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실버세대를 대상으로 전통혼례지도자양성과정과 함께 양평군을 상징하는 다양한 디자인의 틀로 비누 만드는 법을 배우는 ‘문화재비누만들기’ 강좌를 마련, 수강생 중 일부를 인근 초등학교 3학년 수업 중 ‘내 지역 바로알기’의 보조 강사로 투입하고 있다. 실버세대를 겨냥한 강좌가 교육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셈이다.

▲ 전통 혼례 공간 속 특별한 의미도 가득

양평문화원은 올해 4월 말 국비 4억 원, 도비 14억 원, 군비 12억 원, 기탁금 10억 원 등 총 40억을 들여 1만4천250㎡ 부지에 건축 총 면적 2천738㎡,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의 단독 원사를 갖게 됐다.

양평군립미술관을 지나 양평여성회관 바로 옆에 있는 문화원(양평읍 마유산로)의 신축 원사는 풍물연습실, 서예실, 다도실, 자료실, 문화전시실, 문화교실 등을 갖췄다.

무엇보다 독특한 공간은 2012전통혼례지도자양성과정이 진행되는 전통혼례식장과 전통음식연구실 및 실습실 등이다. 전통 혼례를 치를 수 있을 정도의 무대와 하객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마련돼 있다.

실제로 원사를 개관하자마자 5월에만 4쌍의 연인이 이곳에서 성스러운 혼인 맹세를 맺었다고.

오는 11월에도 혼인한 지 예순 돌을 축하하는 부부의 기념잔치인 ‘회혼례(回婚禮)’와 부부의 연을 전통적 방식으로 맺기로 한 예비부부가 예약을 마친 상태다.

재미있는 공간은 또 있다. 전통 혼례를 치르는 중앙무대의 양옆에 있는 작은 방 두 개다. ‘초자례(醮子禮)’와 ‘초녀례(醮女禮)’가 쓰여 있다.

그 뜻을 알고 보니 우리나라의 전통 혼례의 한 과정을 진행하기 위한 의미깊은 방이다.

과정은 이렇다. 초자례와 초녀례는 자식이 예식을 치르는 날 아침 일찍 조상에게 고하고 부모의 교훈을 받으며 한 가정의 꾸리는 성인으로서의 역할을 서약하는 절차다. 신랑은 초자례, 신부는 초녀례다.

이리 따져보면 전통적으로는 혼인 전에 이뤄지는 절차인 만큼 혼례가 치러지는 이곳에서는 필요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양평문화원 측은 현대에 들어서 이 과정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 공간을 꾸려 본격적으로 혼례식을 진행하기 전에 신랑 신부가 각각 부모에게 인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관련 ‘젊은 수강생’ 한정아(45)씨는 “초자례와 초녀례를 진행할 때 신부와 그 부모님이 정말 많이 운다”며 “폐백을 받지 못해 서러웠던 신부 측 부모님이 현대 결혼식장에서는 폐백 받기를 주장하지만 초녀례를 받으면 그런 서운함도 없어보이더라”고 말했다.

문화원 건물에 전통혼례식장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옆에 위치한 여성회관 ‘덕(?)’이다.

양평문화원이 기존에 인근 여성회관이 서양식 웨딩홀을 갖추고 현대 결혼식 사업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문화원으로서 전통적인 혼례를 치를 수 있는 곳을 마련하고 이를 진행할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에 문화원의 원사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문화원 측의 의지를 반영해 건물 최고층에 전통혼례식장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김영희 문화원 과장은 “전통혼례지도자 양성과정은 원사의 전통혼례식장을 활용해 단순 취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로까지 연결되기 때문에 그 의미가 깊다”며 “어르신들이 남의 좋은 일을 도와주면서 행복하게 돈도 벌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양평문화원의 대표 사업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류설아 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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