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_글로벌기업 ‘삼성의 두얼굴’] 상처받은 삼성인

죽음과 싸우고… 삼성과 싸우고… ‘노동자의 눈물’

지난 2005년 7월23일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故 황민웅씨(1974년생)의 부인 정애정씨(36)는 대기업 삼성을 상대로 힘든 싸움을 수년째 벌이고 있다.

정씨는 故 황민웅씨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만나 2001년 결혼한 뒤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지난 2007년 3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근무한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뒤 반도체 작업자에 대한 직업병 문제가 대두되면서 정씨는 2008년 4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유족급여) 신청을 했다.

그러나 정씨는 지난 2009년 5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불승인 판정을 받았고, 이후 다른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과 함께 지난 2010년 1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기각됐다.

현재 항소심을 다투고 있는 정씨는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하면서도 두 자녀를 키우기 위해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정씨는 지난 1995년 삼성반도체에 입사해 황씨와 함께 10여년 넘게 근무하면서 반도체 작업 환경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피고인 당사자라는 이유로 관련 증언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씨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는 그 누구보다 삼성이 잘 알고 있다”며 “직업병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문제를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삼성에 맞서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황씨는 “당시 남편은 기흥공장에서 설비엔지니어로 5라인 작업 공정에 투입돼 일했지만 삼성측에서는 모니터로 작업을 했고, 실제 공정에는 투입되지 않아 ‘황씨의 백혈병 사망은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실상은 새로운 라인이 신설되면서 불안정한 상태에서 남편이 작업 공정에 투입되고 이로 인해 백혈병이 유발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씨는 “삼성에 맞서 이를 입증할만한 증인과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증언하기가 곤란하고, 삼성은 전혀 남편이 해당 작업장에서 일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어 지난 행정소송에서 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백혈병 ‘죽음의 그림자’ 산재인정 외로운 법정싸움

정부도 불인정 처분 남발…이제 삼성이 답해야 할때

정씨는 “현행법 상 산재 입증은 피해자가 입증해야되고 같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증언 자체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며 “열쇠는 삼성이 쥐고 있는 만큼 반도체 근무자의 직업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30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지난 9월30일 기준 삼성전자 계열사 직업병 피해자 현황을 보면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제보자는 97건에 34명 사망, 삼성전자 LCD 17건에 8명 사망, 휴대폰 및 기타 11건에 7명 사망, 삼성전기 12건에 7명 사망, 삼성SDI 10건에 2명 사망, 삼성테크윈 4건 등 총 151건 제보에 58명이 사망했다.

특히, 백혈병, 악성림프종 등과 같은 암과 희귀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 이외에도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면서 불임과 피부질환에 시달린다는 제보도 상당수 있다.

삼성 백혈병·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 자료집에 따르면 삼성반도체 근무자 A씨는 “반도체는 유산율이 엄청 높아요. 높을 수 밖에 없어요. 제 친구들도 있고 임신하면 한방에 되는 거는 거의 없고 라인에서 일했다 하면 세 네번 해도 잘 안된다”고 진술했다.

또 삼성반도체 근무자 B씨는 “머리 아픈 거는 일쑤고, 라인에서 시프트 인원이 스무명이 안되는데 한 열명 정도가 생리불순”이라며 “탈모도 많고 시력 나빠지는 건 기본이다. 일년 정도 일하니까 얼굴 전체에 두드러기 가 났는데 제 친구들은 모두 3개월차부터 이런 일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반올림은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5년간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및 유가족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계속된 산재신청을 하고 있으며 노동부에 제대로된 역학조사와 화학물질 정보 등을 투명하게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반올림은 삼성과 정부는 화학물질 정보는 공개하지 않은채 거듭된 산재불승인 처분을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2007년부터 최근까지 삼성전자 반도체와 LCD사업부 직업병 산재신청자 23명 중 단 1명만을 산재로 인정하고 있다.

최원재기자 chwj7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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