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연극 ‘행복’

KBS수원아트홀서 12월 2일까지

배우, 희곡, 관객, 무대 등 연극의 주요 요소를 모두 충족시키는 웰 메이드 연극이 수원에 상륙했다. 수원KBS아트홀에서 상영중인 연극 ‘행복’이다.

‘행복’에 대한 기대감은 낮았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한 무대극만이 경기도를 비롯한 지방 순회공연에 나서는 상황에서, 인지도가 형성되지 않은 작품이 수원에서 장기 공연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 초반부터 관객의 감정 이입을 돕는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과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비극적 전개에도 곳곳에서 웃음폭탄을 투하하는 시놉시스는 작품성에 대한 의구심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극은 진부하지만 슬플 수 밖에 없는 불치병을 소재로 한다.

은메달리스트 권투 선수인 남편은 동화 작가를 꿈꾸는 사랑스러운 아내를 위해 대리운전과 보험설계 등 삶의 전선에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결혼식조차 올리지 못한 가난한 부부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부자다.

하지만 아내는 심하게 웃거나 울면 기도가 막혀 죽게 되는 희귀병 ‘코넬리아 디란지 증후군’, 남편은 권투 생활 후유증으로 뇌 손상을 입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비극의 시작이다.

정작 자신의 병은 모른 채 서로의 병을 알게 된 두 사람은 그 사실을 감추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남과 여, 단 두 명의 배우는 100여분간 관객을 울리고 웃기며 완벽하게 캐릭터에 몰입했다. 배우의 ‘천의 얼굴’이 무엇인지를 입증하는 두 배우는 관객에게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며 극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슬픔이 폭발하는 순간 단조로워지는 비극적인 로맨스를 지루할 틈 없이 이끄는 희곡과 연출력도 눈부시다.

연극 ‘보고싶습니다’의 이선희 작가와 ‘옥탑방 고양이’, ‘내 이름은 김삼순’ 등을 통해 대학로 대표 연출가로 부상한 정세혁은 부부의 일상에 웃기만 하는 공주와 기억을 잃어버린 삐에로가 주인공인 또 하나의 동화를 버무렸다. 간결한 무대 장치와 조명을 활용한 공간 분할 등은 소극장 연극의 묘미를 한껏 살렸다.

점점 매섭게 부는 찬 바람을 웃음과 눈물로 날려버린 따뜻한 연극이 대학로에서 닳고 닳기 전에 수원을 찾아와 반갑다. 공연은 오는 12월2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 전석 3만원, 수원시민 2만4천원. 문의(031)216-5201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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