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粉靑沙器)란 말은 1930년대 고유섭 선생이 당시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미시마[三島]’란 용어에 반대하여 새롭게 지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줄임말이다.
퇴락한 상감청자에 그 연원을 두는 이 사기는 14세기 후반부터 임진왜란 이전까지 생산된 도자기로 청자에서 백자로 전이되는 전환기에 우리나라에서만 독특하게 발전된 도자 생산 양식이다.
분청사기의 특징은 청자나 백자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하고 활력에 넘치는 실용적인 형태와 다양한 분장기법(粉粧技法), 그리고 의미와 특성을 살리면서도 때로는 대담하게 생략, 변형시켜 재구성한 무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분청사기가 유교의 사회기반 위에서 성장하였고 고려 이래의 불교와 함께 표면상으로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지방마다 특색이 있는 전통의 영향이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청자, 청화백자, 백자와 같은 도자기가 대부분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도자기 제작을 담당하던 관요(官窯)에서 제작되었다면, 분청사기는 민간에서 주도된 민요(民窯)에서 제작되었다.
그래서 지역별, 시기별로 그 형태 및 문양이 매우 다양하고 흥미롭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분청사기는 세계 도자기 역사에서 유례없는, 매우 독창적인 도자기 종류로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가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 장군은 측면이 완전한 직사각형에 가깝고 양쪽 옆면이 직선에 가까운 완만한 곡면을 이루고 있어서 크고 듬직하며 무게감이 느껴지는 형태이다. 몸통의 듬직함과 같이 입술도 넓고 굵으며 굽다리도 완전한 직사각형으로 넓게 만들어 붙여서 전체는 크고 듬직하며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면(面)과 선(線)의 상감기법으로 모란문과 당초문, 그리고 인화문이 몸체 전면에 화려하게 조각된 분청사기로 유약이 굽 안바닥에 이르기까지 전면에 시유(施釉)되어 기형, 장식과 더불어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안정감 있는 당당한 기형에 활달하고 대담한 문양, 섬세한 인화기법의 표현 등에서 15세기 분청사기장군을 대표하는 예이며 도자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분청사기는 16세기경 일본에 전파되어 차(茶)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다구(茶具)로 사랑받기 시작하였고, 임진왜란시 많은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가 일본 도자기술이 발전할 수 있게 촉매제 역할을 한 원조 한류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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