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요란한 포장마차가 떴다. 옛 음악 흐르는 자그마한 오디오와 오색찬란한 조명등을 달았다. 서너명 간신히 끼어앉을 수 있는 규모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곤 국수 한 그릇에 단무지와 김치가 전부인 것이 이름도 있다. ‘황금마차’다. 더 웃긴 것은 요놈이 곧 예술작품이라는 것이다. 예술품이 된 마차를 만나기 위해 지난 14일 수원의 한 경로당을 찾았다.
‘황금마차’를 마주한 곳은 북수동 노인회관(수원시 팔달구 북수동)이었다.
한쪽 문이 내려앉아 어르신은 여닫기도 힘겨운 낮은 철문을 비집고 들어가니, 노인회관의 한 뼘 정원을 황금마차가 주차돼 있다. 마당을 차지한 마차 천정에 걸린 낡은 오디오에서 흘러간 옛 노래가 퍼지고 문닫은 캬바레에서나 구경할 수 있음직한 낡은 조명이 사방으로 빛을 흩뿌린다.
노인회관안에서도 구성진 노랫소리가 퍼져 나온다. 노인회 20여명 할머니들이 한 방에 모여 앉아 젊은 총가들의 통기타와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 박수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 신명난 목소리에 하마터면 본래 목적(?)을 잊고 방안으로 들어갈뻔했다. 예술품임을 자청하는 황금마차의 가면을 벗겨야 하는 것 말이다.
이에 마차 주인장을 찾으니 젊은 작가 천원진씨가 나선다. 다짜고짜 물었다. 이 황금마차가 예술이냐고. 대답은 추호의 흔들림없이 ‘그렇다’이다.
결국 3명의 미술 전공자이자 전업 작가의 협업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천 작가는 지난해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이자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인계시장’을 통해 연을 맺은 수원에서 개인 작업을 결심, 이후 재래시장이 있는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개인 작업실을 꾸렸다.
그곳에서 작업 방향을 고민하던 중 낮이나 밤이나 덥거나 춥거나 폐지를 줍고 삼삼오오 모인 노인을 목격한다. 무료한 삶을 버티는 동네 어르신을 위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다.
그리고 혼자 끓여먹던 국수를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의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를 동료 작가들과 기획한 것이다. 황금마차는 그 프로젝트를 현실화하는 대표적 수단이 됐다.
때마침 경기문화재단 문화나눔센터가 문화바우처 활생(문화공명)의 지원사업을 공모중이었다.
천 작가를 중심으로 의기투합한 젊은 예술가들의 소통과 예술, 지역성 등을 고려한 프로젝트 기획안은 선정작으로 꼽혔다. 그렇게 지원금을 받고 본격적으로 수원의 지동과 북수동 등을 중심으로 60세 이상 어르신에게 국수 대접하는 황금마차 영업을 시작했다.
지난 9월에 시작한 황금마차는 이달말쯤 곧 영업을 끝낸다.
3개월여간 국수 한 그릇이 따뜻한 관심과 정으로 느껴지길 바라며 동네 곳곳을 누볐다. 어르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음악과 조명기기를 설치했고, 인맥을 총동원해 악기 연주와 노래 잘 부르는 동료 작가들을 참여시켰다.
“15년 미술했는데 전시작을 봐도 이해되거나 감흥이 없어요. 미술, 도대체 그 예술이 뭘까요. 즐거운 거 아닌가. 정확히 모르겠지만, 결국 예술의 정점은 즐거움을 주는 봉사인 것 같아요.”
평생 자식 뒷바라지에 밥해주느라 허리 필 틈 없던 어르신들과 노래하며 함께 놀고 뜨끈한 국물에 국수 한 덩이 말아 건네는 것이 곧, ‘황금마차 프로젝트팀’의 예술작업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기언 문화나눔센터 담당자는 “커뮤니티 아트의 예술성을 실험하는 시기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작가군을 발굴 지원해 그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소외계층에 적극적으로 문화예술향유기회를 제공하는 문화바우처 활생사업을 통해 이 시대의 새로운 예술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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