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호 칼럼] 농촌농민 너무 무시한다

임병호 논설위원•社史 편찬실장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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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쌀 생산량이 400여만t에 그치면서 32년 만에 가장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정부 비축분과 수입쌀을 시중에 풀면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쌀 생산량은 냉해로 생산량이 급감한 1980년 335만t 이후 가장 적다. 재배면적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데다 태풍의 영향으로 작황까지 부진했기 때문이다. 올해 쌀재배면적은 8 4만9천㏊로 지 난해보다 0.5% 감소했다. 더구나 8월 말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영향으로 전남, 전북과 충남 등에서 벼 이삭이 쪽정이만 남는 백수 피해가 생긴 데 이어 9월과 10월 초에는 태풍 산바로 일조시간도 줄어 낟알이 제대로 영글지 못했다. 시도별 생산량은 3.8% 늘어난 경기(42만1천t)를 빼고는 모든 시도에서 감소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신곡을 대체할 수 있는 2011년산 정부ㆍ민간 재고와 수입쌀 등을 감안할 때 수급 불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태평이다. 2012년 양곡년도 이월재고 91만t, 쌀 의무수입량 47만8천t 등 을 감안하면 내년 전체공급량은 수요량에 비해 82만t 정도가여유가 있다고 말한다. 산지 쌀값과 산지 조곡 가격도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낙관한다. 그러나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선 올해 경기지역의 경우 벼 수매가 인상률이 지난해 대비 2%대에 그쳤다. 특히 인상률이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등 타 지역의 절반 수준인데다 농민단체에서 요구하는 적정 수매가를 한참 밑돈다. 농협중앙회가 올해 경기지역에서 생산된 쌀 18만t을 수매키로 했지만, 최근 경기지역 21개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매입하는 벼 수매가가 1등급 및 특등급 조곡 40㎏ 기준 평균 6만1천620원으로 결정, 지난해 6만202원에 비해 겨우 1천418원 올랐다. 인상률이 고작 2.4%다. 여주의 경우 올해 수매가가 6만5천500원으로 지난해 6만5천원보다 500원, 김포는 6만2천520원으로 770원, 이천은 6만6천원으로 1천원 인상되는 데 그쳤다.

이는 농민들이 요구하는 적정 수매가 7만5천원을 1만원 이상 밑도는 가격으로 최소 3% 후반대에서 최대 7% 대의 인상률을 보인 타지역에 비해서도 크게 뒤떨어진다. “농협이 내놓은 벼 수매가는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터무니 없는 액수다. 수매가를 재조정하거나 등급별 기준을 낮추는 등의 대책이 절실하다”는 전국농민회총연맹 경기도연맹의 촉구는 지극히 당연하다.

정부가 쌀을 저가로 매입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에 지원자금을 더 주도록 경양평가 방식 변경을 추진하는 것도 뭘 모르고 하는 일이다. 농수산식품부는 지난 15일 경기ㆍ인천지역 농협, 민간RPC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RPC 경영평가 및 운영제도 개선’을 위한 간담회에서 경영평가 항목에 ‘수학기 벼 매입값 증가율’과 ‘쌀판매가격 증가율’을 신설, RPC가 농가로부터 벼를 높은 값에 매입하거나 소비자 판매가를 높게 책정할수록 낮은 평가를 받도록 했다. 개선안은 또 영업이익을 많이 낸 PRC엔 가점을, 덜 낸 곳에는 감점을 줘 차등 지원키로 했다. 정부가 RPC를 압박해 쌀값을 통제하겠다는 저의다.

농민은 쌀을 비싸게 팔려고 하는 게 당연한데 농민을 보호해야 할 농식품부가 오히려 싸게 사라고 윽박지르는 셈이다. 곡물이 조금만 남아돌면 대체작물로 전환하라고 했다가 부족하면 이런 대책을 내놓는 등 지침이 수시로 바뀌어 농민들은 혼란스럽다. 쌀 수확량 감소로 쌀값이 예년 수준이 되는 듯 하자 정부지원금으로 쌀 유통관계자들을 협박하고 있는 졸속행위다. 쌀값 인상이라는 근시안적 문제로 바라보지 말고 식량자급률과 식량주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되는데 참 걱정스럽다.

지난번 태풍 때 피해를 입어 농약대와 대파비 명목으로 준 ‘재난지원금’은 애들 장난이 따로 없다. 각 지자체는 소방방재청이 태풍 피해면적과 피해율을 토대로 산정한 ‘재난 지수 300 이상’ 농가를 대상으로 50만원부터 최고 5천만원까지 지원금을 지급했거나 지급 중이다. “재난지원금은 실손 보상을 해주는 보험과 달리 구호적 차원의 위로금 성격”이라고 소방방재청은 말하지만, 대체적으로 3.3㎡(1평) 당 20원에도 못 미치는 건 아무래도 너무 했다. 영세농에겐 그나마도 ‘그림의 떡’이다.

오늘날 농촌ㆍ농민의 대우가 대개 이렇다. 12월 19일, 농민의 힘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社史 편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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