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은 역사의 소용돌이에도 소리 없이 흐르는 금강, 그 건너에 공산성이 있다. 금서루에 들어서자 문화해설사가 안내를 자청했다. 부담스러워 선채로 대강의 설명을 듣는데 매우 구체적이다. 알고 가는 길이 한결 가볍다. 쌍수정 아래 궁터가 있고 무엇보다 원형극장을 닮은 연못 터가 인상적이다. 복원된 임류각의 문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백제의 화려한 역사가 전해온다. 광복루를 지나자 칡넝쿨 드리운 토성이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강변으로 접어들어 성벽길 따라 내려오는데 영은사 앞에 멋들어진 만하루와 연지가 내려다보였다. 다시 언덕을 오르면, 잠종 냉장고가 마치 소크라테스의 감옥처럼 쇠창살을 매달고 있다. 누에부화를 뽕잎 나는 오월까지 늦추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토굴 냉장고다. 나는 다시 가을빛 따가운 길 걸어 무령왕릉 참배 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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