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만 덩그러니… 인쇄업 ‘연말특수’ 옛말
관공서 달력ㆍ수첩 등 제작 옛날만 못해
원자재값도↑… “종이값만 건져도 다행”
12일 오전 수원 팔달구 매산초등학교 주변. 50여 곳에 이르는 인쇄소가 줄지어 있지만 폐업한 업체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특히 예년 같으면 달력이나 수첩, 연하장 등 인쇄 수요가 몰리면서 새벽부터 인쇄기를 돌려도 물량을 맞추기가 힘들었던 시기지만 인쇄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를 좀처럼 들을 수 없었다.
기계 소리가 들리는 한 인쇄소를 찾아 들어가자 인쇄 종이 없이 빈 기계만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인쇄업체 대표 김모씨(51)는 “일이 없다고 기계를 그냥 두면 잉크가 굳어 빈 기계라도 돌려야 한다”며 멍한 표정으로 기계를 바라봤다.
아내와 함께 이곳에서 15년 넘게 밥벌이를 이어왔다는 K씨는 “보통 여름에 손해를 보고 겨울에 손실을 메꿔왔는데 올겨울은 예년보다 주문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올 초부터 매달 150만∼200만원의 빚만 쌓이고 있어 이 일을 계속해야 되는지 고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관공서와 기업 등이 비용 절감 차원에서 수첩이나 달력 제작을 대폭 축소하거나 자제하면서 ‘연말 특수’는 이미 옛 추억이 됐다.
더욱이 종이와 잉크 등 원자재 값은 최근 5년 사이 2∼3배 넘게 치솟고 있는데다 최근에는 대기업까지 인쇄시장에 뛰어들어 업계에서는 ‘종이 값만 건져도 다행’이라는 푸념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업체 사장 박모씨(47ㆍ여) 역시 “요즘에는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원청에서 하청을 얻어내기 위해 3천만∼4천만원 하는 기계 2대를 구매했지만 놀리는 날이 더 많다”며 “주변에서 인쇄업을 하는 상인 중 은행에 빚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으로 주변에서 문을 닫은 업체가 10여곳이 넘는다”고 밝혔다.
대한인쇄문화협회 관계자는 “인쇄업 자체가 사양 산업에 접어든 지 오래지만 가족까지 따지면 1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인쇄업으로 먹고살고 있다”며 “하도급 구조 개선이나 우대 금리 적용 등 정부 차원의 지원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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