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하의 냠냠독서]부모여, 쇠사슬을 끊을 용기가 잇는가

아래 그림은 15, 16세기의 도서관 모습이다. 그냥 볼 때는 앉아 볼 수 있는 의자가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쇠사슬에 책이 묶여 있음을 알 수 있다.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서 도서의 보존방법을 보자. 그 당시에는 책을 쇠사슬로 서가에 묶어 두는 것은 보기 드문일이 아니었다. 책에는 놋쇠틀롸 고리를 달아 쇠사슬을 끼우고 쇠사슬 한 쪽 끝을 서가에 단단하게 붙들어 매었다.

 

이 쇠사슬에 묶인 책은 쇠사슬의 길이 이상 서가에서 이동할 수가 없었다. 책의 자유는 쇠사슬로 정한 범위내로 제한되어 있었다. 사실, 당시의 도서관은 도서관의 이용을 촉진하는 시설로서가 아니라 도서를 보존하기 위한 시설로 생각하고 있었다.’(-S.R 랑카나탄 도서관학 5법칙, 한국도서관협회/28쪽)

책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늘 말로만 입으로만 읽는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보자. 아이가 원하는 미래를 찾기 위해 우리는 공부를 한다. 엄밀히 말한다면 교과서도 독서이고 반복된 독서의 결과를 시험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명한 현실 속에서 아이를 왜 영상매체 속으로 빠져 들게하고 사색으로부터 쫓아내는가. 지금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 땅의 아이들은 점점 책과 멀어질 것이다.

 

인기리에 종영된 ‘뿌리깊은 나무’라는 드라마에서 세종대왕은 글자를 만들었지만 그 반포를 알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그들이 기꺼이 아무런 이름없이 희생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고, 그것을 막았던 세력은 백성이 감히 나와 같이 되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자소학’은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기 위한 전단계로 가장 쉬운 한자공부의 첫걸음이다. 그 내용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포식난의飽食煖衣 일거무교逸居無敎 즉근금수卽近禽獸 성인우지聖人憂之’.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편히 살면서 가르치지 않으면, 곧 금수에 가까워질 것이니, 성인은 그것을 근심하느니라’ 라는 뜻이다.

이제 진지잡수셨습니까? 했던 자고나면 굶어 죽던 시절의 인사는 끝났다. 오늘 하루 독서를 하셨습니까? 쇠사슬을 끊고 매일 밥을 먹듯 당신의 자녀와 함께 책을 펴십시오. 문의(031)257-5067

전방하 동화작가·‘독서특훈하나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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