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어울리던 전통 살려 '풍요 기원' 축제한마당
‘설은 나가서 쇠어도 보름은 집에서 쇠어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
새로운 해가 시작하는 1월1일이 중요하지만,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은 음력을 사용하는 사회에서 가장 큰 첫 보름달이 뜨는 1월15일의 중요성이 그에 못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월 대보름은 일년 농사의 풍년을 소망하고 준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설에는 집에 못갔더라도 보름에는 꼭 집에 들어가 농사짓기를 준비해야하는, 온 가족의 생존이 달린 명절이다.
하지만 농업인구가 급감하면서 정월대보름의 의미도 퇴색하고 다채로운 세시풍속도 사라졌다. 이러한 가운데 오산문화원이 정월대보름의 전통적 의미를 담은 축제를 마련, 이를 지역 대표 행사로 발전시킬 방침이어서 주목된다.
■역사 속 정월대보름
음력 1월15일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세시풍속으로 따지면 설날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날로 꼽힌다.
이날에는 약밥 또는 오곡밥, 묵은 나물, 복쌈, 부럼, 귀밝이술 등을 먹었다. 지금도 오곡밥과 나물, 부럼, 귀밝이술 등은 많은 이들이 정월대보름을 기념해 챙겨 먹는 것들이다.
특이한 것은 설에 개인적인 의례를 행한다면 대보름에는 마을 공동의 의례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의 개인적 소망보다 그네들이 함께 머무는 마을 공동체의 한 해 풍년을 기원하는 시기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예로 풍년을 기원하며 짚을 묶어 기 모양을 만든 후 그 끝에 벼·기장·피·조의 이삭을 넣은 것을 매달아 집 곁에 세웠던 ‘볏가리’가 있다.
또 짚ㆍ솔잎ㆍ나무 등을 모아 언덕위에 쌓아 달집을 짓고 달이 뜨면 불을 질러 대나무가 타는 소리로 마을의 악귀를 쫓고 다 타서 쓰러질 때 그 방향과 모습으로 흉풍을 점치는 ‘달집태우기’, 대보름날 아침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고 말해 다가올 여름 더위를 대비하는 ‘더위팔기’도 있다.
노는 것도 많은 사람이 참여해 어울릴 수 있는 놀이가 대부분이다.
단순한 유희나 오락이 아니라, 승패를 가르며 농사의 풍흉을 점쳐보는 데 목적이 있다는 특징도 있다.
대보름날 밤에 거행하는 줄다리기, 이에 앞서 펼쳐지는 고싸움놀이, 횃불을 들고 놀다가 빼앗거나 꺼뜨리는 횃불싸움, 부인들이 허리를 숙여 만든 다리 위를 성장한 공주가 양쪽 시녀의 부축을 받아 노래에 맞춰 걸어가는 ‘놋다리밟기’ 등이다.
■기록 속 오산시의 정월대보름
명절에 펼쳐지는 마을 공동 의례나 놀이 등은 지역에 따라 부르는 명칭과 그 방법이 조금씩 달랐다. 오산의 정월대보름은 어떠했을까.
오산문화원이 발간한 ‘오산의 역사와 문화’에 따르면 오산시 금암동에서는 정월대보름에 당집산에 올라가 짚수세미를 둘둘 묶어서 달이 뜰 때 각자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비는 ‘달맞이’를 했다고 한다.
또 오산시 서동(서녘말)에서는 달맞이를 가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매봉재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특히 서동에서는 정월 14일날 ‘쥐불놀이’를 했다. 마을의 서씨네와 유씨네가 서로 마주면서 논두렁을 태웠는데, 이 때 유씨들은 “서강아지 쥐불이요”라고 하고 서씨는 “유강아지 쥐불이요”라 외치면서 서로 쥐불놀이 싸움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오래전 오산에 터 잡고 살았던 많은 마을 사람들이 민족 고유의 대명절인 대보름에 어울려 함께 즐기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기록이다.
이 같은 전통적인 정월대보름의 분위기를 찾기 어려운 가운데 오산문화원은 이 문화유산으로 지키기 위해 적극 나섰다.
오산문화원은 지난 2005년부터 매년 ‘정월대보름 맞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오산천 둔치에서 진행해오던 것을 논밭을 태우며 농사짓기를 준비하는 전통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논이 있는 오산 운암뜰(시청 앞 교차로~부산동 고속도로 지하차도)로 행사장을 옮겼다.
시 최초로 도로를 통제하고 행사를 진행해 불만을 가진 일부 시민의 반발도 있었지만, 2만여명의 어마어마한 시민이 운집했다.
장소를 변경함에 따라 전통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은 물론, 쥐불놀이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깡통을 돌리면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발생 가능성이 줄어드는 등 마을 공동체가 어울리는 기존 정월대보름의 의미가 한층 강화됐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풍성하고 쉽게 즐길 수 없는 프로그램 덕이다.
5천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 행사에서는 윷놀이 경연을 비롯해 연만들기, 널뛰기, 제기차기, 굴렁쇠, 투호놀이, 깡통 돌리기, 거리행진 방식으로 진행한 지신밝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특히 윷놀이 경연은 시 6개동에서 초중등부, 청장년부, 여성 및 주부, 어르신 등으로 부문별 경연을 진행함으로써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함께하는 자리로 효자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호두와 땅콩과 같은 부럼, 뻥튀기, 엿치기, 떡메치기 등 전통적 먹거리도 제공했다. 오산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전문 상인이 참여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한 몫 했다는 평이다.
지자체의 문화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도 풍성했다.
풍물놀이, 북청사자놀이, 줄타기, 널뛰기, 민요 등 전문가(단체)가 특설무대에 올라 흥겨운 명절 분위기를 만들었다. 남사당놀이 보존회의 권원태 무형문화재 제13호, 국악협회 오산지부, 북청사자놀이 보존회 등이다.
무엇보다 오산문화원이 주관하는 정월대보름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검은 하늘에 휘엉청 밝은 달을 향해 솟아오르는 빨간 불길이 인상적인 ‘달집 태우기’다.
오산문화원은 행사장의 논 한가운데에 높이 10m의 대형 달집을 세운다.
이날 행사 중 일반 시민이 소원을 적은 소원지를 달집에 엮어놓은 새끼줄에 가득 묶고 불을 붙인다. 드디어 달집에 불을 붙이면서 시민의 간절한 소원도 함께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것이다.
유종대 사무국장은 “전통문화를 찾고 그것을 현대에 맞게 유지하는 것이 문화원의 역할”이라며 “지난해부터 좁은 천변길에서 너른 논밭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프로그램과 참여ㆍ방문 인원이 크게 늘어 풍요를 기원하는 신명나는 축제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작은 도시 오산은 더 많은 사람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면서 “인근 수원이나 서울 등에서도 현대식 건물만 있어서 이 같은 전통적인 방식의 큰 축제를 경험하기 어려우므로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 오산을 대표하는 전국적인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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