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만나고싶었습니다] 과천시장 여인국

의전ㆍ격식 파괴 ‘실사구시’ 시정 365일 초심으로 현장을 누빈다

여인국(57) 과천시장은 비싼 소고기나 회보다는 순대국과 콩나물을 즐겨 먹는다. 아들, 딸이 챙겨주는 용돈은 죄다 저금한다.

최근에는 관용차량 대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고 관용차량을 이용할 때면 수행비서에게 차 뒷문도 못 열게 한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경비절감에 나선 지자체의 짠돌이 행보가 단체장의 생활스타일까지도 바꾸고 있는 것일까.

1월 10일 여인국 시장을 만났다. 지난 2002년 6월 과천시장으로 취임한 이래 10년을 과천맨으로 살아온 그는 요즘 새해를 맞아 동별 신년인사회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주민들과 만나는 자리에 나갈 땐 양복 한벌 ‘쫙’ 빼입고, 빤짝거리는 넥타이로 멋내고 싶어지기도 할텐데 그에겐 통하지 않는다. 인터뷰 당일에도 한 3~4년은 입었을 법한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10년차 베테랑 과천시장에게 인터뷰는 어쩌면 ‘식은 죽 먹기’보다 쉽고, 간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3번 연속 재임에 성공한 그에게 남은 임기는 이제 1년 6개월. 군대로 따지면 ‘말년 병장’인 셈.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시기인데, 여인국은 거꾸로다. 늘 한결같이 신참의 자세로 ‘거꾸로’ 살아가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산부인과 의사ㆍ군인이 되고 싶었던 아이…친구 같은 시장이 되다

여인국 시장이 어렸을 때 “인국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맘때 보통의 남자 아이들이라면 ‘대통령이요’, ‘과학자요’, 아니면 ‘경찰관이요’라고 했을게다. 그러나 여 시장의 답변은 동네 아줌마들을 배꼽 잡고 웃게 만들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고 싶어요.”

똘망똘망한 사내아이가 그냥 의사도 아니고 산부인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니 동네 어르신들이 보시기엔 신통방통했을 것이다.

“어렸을 적이니 아마도 소아과 의사를 착각해서 산부인과 의사라고 대답했을 겁니다.(하하) 제 눈을 빤히 보시면서 ‘너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으시며 하하호호 웃으시던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동네 아줌마들께 웃음을 안겨주던 산부인과 의사의 꿈은 중3 때 군인으로 변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땐 작은 마을에 군수가 되어 대한민국 최고의 마을을 만들어보자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군수가 되자’는 그의 꿈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면서 좀 더 가까워지게 된다.

제24회 행정고시 합격 후 환경청 행정사무관을 시작으로 교통부 국제협력과장, 건설교통부 도시철도과장 등을 거쳐 중앙부처에서 18년을 지내면서 그는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

이후 경기도로 내려와 건설도시정책국장, 용인부시장, 경기도 환경국장을 지냈다.

똑소리나게 일 잘하던 그는 2002년 과천시장이 됐다. 인구 7만의 과천에서 ‘작은 마을의 군수가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된 것.

여인국 시장이 취임 후 지난 10년 동안 과천은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성장했다.

“과천은 1년 예산이 2천200억 내외로 재정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돈 많은 도시가 절대 아닙니다. 단지 돈이 많은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과천도 세수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주요정책인 ‘교육’과 ‘복지’ 예산만큼은 삭감하지 않았습니다. 올해 교육복지와 주민복지에 투자되는 예산은 500억원으로 전체 예산 가운데 25%를 차지합니다.”

과천이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평가받은 이유는 다름 아닌 ‘교육환경’ 때문이다. 여인국 시장은 재임 기간 중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을 현실화하기 위해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다.

전국 최초로 학자금 대출이자 전액을 지원해 학부모들의 걱정을 덜어 주고 있으며 방과 후 온종일교실, 학부모보조교사제 등을 운영해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힘쓴 결과, 2012학년도 수학능력평가 전 영역에서 과천시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서서히 보이고 있다.

과천지식정보타운 지구계획 확정…“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과천 확고히 매진”

해군 중위 출신인 그가 ‘군인정신’으로 10년차 과천시장직을 원만하게 수행하고 있지만 간혹 힘이 부칠 때가 있다. 과천지식정보타운 보금자리주택 사업이 바로 그 중 하나였다.

“지난 10여년 간의 진통 끝에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과천지식정보타운 사업이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사업이 변경되면서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시장 주민소환과 LH의 사업추진 지연 등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지난해 모든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올해 토지보상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렵게 진행된 사업인 만큼 리스크 없이 사업을 완료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총 135만㎡ 규모의 과천지식정보 보금자리주택 내에는 총 6천217가구의 주택이 건설될 계획이며 이 가운데 임대 또는 중소형 공공분양인 보금자리주택이 65.3%(4천60가구)를 차지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사업면적의 16.8%인 23만㎡를 지식기반산업용지로 확보해 쾌적한 기업환경이 조화되는 복합도시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사업 성공의 열쇠는 바로 ‘기업유치’에 달렸다. 현재 7개의 기업이 입주를 희망해 MOU를 체결한 상태다. 남은 임기동안 여인국 시장이 전력투구해야 할 분야이기도 하다.

2013년 해가 뜨면서 과천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부과천청사 이전 때문이다. 여인국 시장도 ‘정부청사가 이전하면 과천은 뭐 먹고 사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시 승격 이후 25년 만에 맞는 급격한 환경에 시민들의 염려와 걱정이 클 겁니다. 정부과천청사 이전으로 지역경제 붕괴와 공동화 현상 등을 우려하는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지 일시적으로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청사에 새로 입주하는 기관의 조기 입주와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 정부청사 이전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먼 훗날 공주시장은 울고 과천시장은 웃을 겁니다.(하하)”

지금이야 허허 웃지만 2012년 여인국 시장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마음고생이 컸다.

여인국시장주민소환운동본부가 정부 보금자리주택 정책, 과천정부청사 이전 등에 대한 여 시장의 미온적인 책임을 묻겠다며 서명작업을 벌여 주민소환투표가 발의됐기 때문. 결국 유효투표율 33.3% 못넘겨 주민소환은 무산됐다.

“돌이켜보면 고비마다 쉽지 않은 난관이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과천’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저를 지켜주고 주민들의 응원이 저를 키워주었습니다.”

‘first in last out’ 화재진압하는 소방관의 자세로 살자

큰 파고를 넘고 한층 더 단단해진 그는 ‘위기는 곧 기회’는 생각으로 흔들림없이 시정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2013년도 과천시정의 키워드는 마무리, 즉 ‘해피엔딩’이다. 그리고 여 시장도 개인적으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직원들에게 6시에 칼퇴근하라고 잔소리한다. 그리고 시간날 때마다 테니스를 치고 섹소폰을 분다. 매일 아침 7시 40분 영어회화 공부를 한다.

“최근 소방관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타워’를 봤습니다. 소방대장 ‘영기(설경구)’가 시민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는데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소방관 사이에는 ‘first in last out’이라는 말이 있는데 화재현장에 맨 먼저 들어가 맨 나중에 나온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영화 속 정치인은 여전히 혼자만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습에 무척 불편했습니다.”

최근 본 영화에서 시민들을 위해 희생한 소방관처럼 살고 싶다는 여인국 시장. 그는 과천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갈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10년 동안 과천시민의 격려와 칭찬을 먹고 살아온 그는 남은 임기 1년 6개월 동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후임시장을 위해서 조용하게 사는 게 미덕”이라는 신념으로 오로지 시정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는 시간과 자리에 연연해 하지 않고 대학 새내기처럼, 사회 초년생처럼 ‘거꾸로’ 살며 과천의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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