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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체험 리포트]푸드뱅크&푸드마켓
사회 1일 현장체험

[현장체험 리포트]푸드뱅크&푸드마켓

맛있는 나눔… '사랑 푸드' 배달 왔어요~

‘해누리 푸드마켓’.

별 생각 없이 보면 ‘마켓’이라는 표현 탓에 골목이나 도로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마트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994-1번지에 위치한 이곳 해누리푸드마켓은 나누는 사람의 배려와 받는 사람의 행복이 어우러져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뿜어지는 온정으로 추운 날씨를 녹이고 있었다.

■못 팔게 된 빵과 떡, 누군가에게는 일용할 양식

6일 오전 9시. 푸드뱅크 및 푸드마켓 시설 종사자로 일일체험을 하기로 한 기자는 시간 맞춰 현장을 방문했다.

직원들과 인사하기가 무섭게 재빨리 푸드뱅크 트럭에 탑승해 음식물 수거에 나섰다.

이날 기자와 함께 제과점과 떡 가게를 돌며 음식을 수거하기로 한 동행자는 수원 우만종합사회복지관 소속 정재현 사회복지사(30)로, 3년 전 이곳에서 사회복지사로 첫 근무를 시작한 이후 줄곧 업무를 담당해 온 베테랑이다.

오전에는 정 복지사와 함께 사전에 푸드뱅크에 음식물 방문을 요청했던 수원시 팔달구와 영통구 내 위치한 제과점과 떡집 등을 돌며 음식물을 거둬들이는 업무가 주어졌다.

일일체험을 시작하기 전 기부되는 식품의 양이 얼마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했던 우려는 방문 리스트를 보는 순간 기우로 전락했다.

이날 오전에 수거를 해야 하는 업체만 20곳에 달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우만동에 있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이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푸드뱅크 트럭이 주차하는 모습을 유리벽 너머로 보고 기자가 상점으로 들어가자마자 항상 그래 왔다는 듯이 기부할 빵이 쌓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아르바이트생들이 가리킨 빵 상자에는 어제 미처 다 팔지 못한 빵과 케익이 포장된 채 담겨 있었다.

우만동 일대에 이어 다음은 영통동 일대였다.

영통동에 있는 하이몬드 제과점은 대기업 중심의 제과점 틈바구니에서 굳건히 살아남아 운영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 복지사는 다른 어떤 곳의 빵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빵의 맛이 가장 좋다고 귀띔했다.

어제 재고된 빵이 없자 방금 구워낸 빵을 싸주면서 기부에 보태겠다는 업주 이세옥씨(47)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더 훌륭한 일을 하는 분들도 많은데 자신이 할 수 없다며 끝내 사양한 채 맛보라며 따뜻한 소보루빵만을 건넸다.

인근에 있는 프랜차이즈 떡 가게의 점주 김도현씨(50)는 3년 전 이곳에 가게를 내기 전부터 이미 푸드뱅크에 음식을 기부해 왔던 열성 기부자였다.

음식 기부를 하는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김씨는 갓 뽑아낸 커피와 쌍화차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김씨는 “밀려 있는 주문과 매일 생산해야 하는 분량 때문에 바쁜 나머지 오늘 생산한 떡을 기부하지 못하고 전날 생산한 떡을 기부하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게 생각된다”면서 “하지만 이렇게 재고라도 기부를 한다는 것이 생활의 활력소와 행복의 조건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음식 수거 막바지는 경기도청 주변에 있는 수원역 일대 제과점이 대상이었다.

평소 기자가 가끔 방문해 빵이나 케익을 샀던 제과점도 푸드뱅크에 기부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날 기부된 음식은 모두 법인세법시행령 제19조와 소득세법시행령 제55조에 의해 기탁물품 전액에 대해 100% 손비처리 또는 기부금 영수증이 발급됐으며, 이를 통해 기부자들은 연말정산 시 법률에 의해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고마움

이날의 오후 일정은 오전에 거둬들인 빵과 떡을 비롯해 대형업체들이 기부한 음료, 식료품 등을 사회복지시설에 배달하는 순서였다.

출발하기에 앞서 푸드마켓에 물품을 구매하러 찾아온 손님들을 맞는 업무도 맡아서 해봤다.

푸드마켓에는 다양한 기부자들이 기부한 곡식류, 음료, 레토르트 식품 등을 비롯해 의류, 제화류, 분유 등 다양한 생활물품이 배치돼 팔려나가고 있었다.

정부가 인정한 긴급지원대상자와 기초생활수급탈락자, 차상위 계층 등은 매주 월~금요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 사이에 이곳을 방문해 회원으로 등록하면 지급되는 카드를 이용해 매월 1차례씩 일정량(약 2만5천원 가량)을 구매할 수 있다.

이날 푸드마켓을 찾은 손님 대부분은 50대 이상이었으며 푸드마켓 관리 업무를 하는 공익근무요원에게 상품 설명을 듣고 계산도 부탁하면서 연방 고마움을 표시했다.

지팡이를 짚고 어렵게 찾은 할머니와 구부정한 허리로 걸어오신 할머니는 푸드뱅크에 비닐봉지와 같은 포장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는지 보자기와 배낭, 손수레를 미리 준비해 챙겨 오셨다.

추운 날씨 속에 할머니들의 가시는 길이 걱정돼 마켓 밖까지 짐을 내다 드렸는데 조그마한 배려에조차 할머니들은 “고마워 고마워”라는 말을 연이어 건네셨다.

오후 2시부터는 기증된 음식을 사회복지시설에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음식을 전달하기에 앞서 분류작업이 이뤄졌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유통기한 초과 식품을 골라내기 위함이었다.

드문 경우지만 이따금 유통기한이 초과한 음식이 기부되면 인체에 큰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전달하기에 앞서 골라내는 작업은 필수였다.

선별 작업이 끝나자마자 저소득층이 밀집 주거하는 지역에 있는 시설을 돌면서 가가호호 전달될 수 있도록 시설의 사회복지사에게 물품을 배달했다.

푸드뱅크 트럭이 도착하자마자 반가운 기색에 짐 나르는 것을 돕는 봉사자들의 눈빛에서 주변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보였다.

지동에 위치한 한울마을 복지관의 수녀님의 눈에서, 화서동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엠마우스 복지관의 복지사의 눈에서 ‘설을 앞두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음식이 생겨 다행’이라는 안도와 감사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평소같으면 무겁게 느껴졌을 음료나 식료품 상자가 이날따라 가볍게만 느껴졌던 것은 상자 안에 음식만 담긴 것이 아닌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마저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과가 마무리될 즈음, 정 복지사에게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저소득층에게 제공될 선물꾸러미 160상자가 배달될 것이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설 명절을 앞두고 각 가정에서 따뜻한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고기나 떡 등이 담긴 상자가 전달됐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퇴근도 미뤄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짐을 나르는 복지사나 공익근무요원 중 누구 하나 불만을 내놓지 않았다.

명절 연휴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아 어떻게 전달을 해야 각 가정에서 빨리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할 뿐 자신들의 퇴근시간이 늦어지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게 됐다고 해서 볼멘소리를 하지 않을까 했던 기자의 고민은 어리석은 걱정이었다.

단 하루 체험하는데 그쳐 큰 힘이 되진 못했지만 이날 일을 하는 시간 동안 마주쳤던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배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기자의 가장 큰 역할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체험이 종료됐다.

 


푸드뱅크는 식품제조기업 또는 개인에게서 식품을 기탁받아 결식아동, 독거노인, 재가장애인, 무료급식소, 노숙자쉼터, 사회복지시설 등 소외계층에 개한 식품지원 복지서비스를 전달하는 ‘식품나눔’제도이다.

푸드뱅크 운동은 1967년 미국에서 Second Harvest(제2의 수확)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됐으며 현재는 캐나가(1981년), 프랑스(1984년), 독일(1986년), 유럽연합(1986년) 등 주로 사회복지 선진국을 중심으로 보편적 운동으로 발전했다.

경기도내에는 54개 푸드뱅크와 17개 푸드마켓이 운영되고 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푸드뱅크를 통해 기탁된 기탁가액은 450억원이 넘었으며 6천여 시설과 8만5천명이 넘는 소외계층에 전달됐다.

경기도는 올해 전국 최초로 푸드뱅크마다 인건비를 연간 2천200만원 지원하는 등 활성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정진욱기자 panic82@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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