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지역은 강릉이다. 두 분이 태어났던 곳이 율곡의 외가였던 오죽헌이기 때문이다. 오천 원권 지폐만 보더라도 율곡 선생과 함께 오죽헌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발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은 경기도 파주이다. 본향(本鄕)인데도 세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율곡 선생이 태어날 무렵 신사임당은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강릉에서 지내다 그를 낳았다. 신사임당 또한 그의 어머니가 친정어머니의 간호를 위해 강릉에 머물러 있을 때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율곡은 여섯살이 되던 1541년 강릉에서 파주 파평면 율곡리 본가로 돌아온 후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나섰다. 이후 그는 파주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특히 화석정은 율곡선생이 노년에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던 곳이기도 하다.
자운서원 국가지정 문화재 승격
현재 파주시 율곡리에는 후학들이 선생이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자운서원과 율곡 이이 묘가 조성돼 있다. 또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 묘도 들어서 있다. 율곡과 신사임당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임에도 그동안 문화재로서의 평가와 지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강릉 오죽헌은 이미 지난 1963년에 보물 제 165호로 지정됐다. 반면, 자운서원을 비롯해 율곡이이와 신사임당묘는 아직까지 경기도기념물로만 지정돼 있을 뿐이다.
상당히 늦은 감이 있지만 이달 율곡 유적지가 국가지정 문화재로의 승격을 앞두고 있다. 파주시가 추진해온 ‘파주 율곡이이 유적 사적승급’ 신청이 지난해 12월 문화재청 사적분과 심의위원회에서 이미 가결됐다.
문화재청은 이달 열릴 심의에서 최종 승격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지만 국가지정 문화재 승격은 무난할 것으로 본다. 이번에 최종 승격결정이 되면 파주시로선 1970년 자운서원 복원 이후 40여년 만에 이뤄낸 쾌거가 될 것이다. 여기에 오기까지 민관이 하나가 돼 각고의 노력을 했던 게 사실이다. 난관도 많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2005년에는 국가유적 승격을 추진했다가 문화재청 심의위원회에서 부결됐던 아픔을 겪었다.
지난해 6월에는 사적승격의 정당성을 알리고 관련분야 전문가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시가 나서 율곡 이이사상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직접 문화재 위원들에게 서한문을 보내는 등 국가사적 승격의 필요성을 알렸다. 관련분야 전문가들은 율곡의 묘소만으로도 국가사적의 가치가 충분하고 자운서원 또한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지역주민과 유림들도 “파주시민의 염원이던 국가사적 승급신청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돼 가슴이 다 후련해졌다” 고 반기는 분위기이다. 이번 승격결정을 계기로 율곡 이이의 본향이 ‘파주’라는 점을 제대로 알릴 수 있게 됐다.
40년 만에 이룬 ‘파주의 쾌거’
그동안 강릉 오죽헌에 가려 제 빛을 발하지 못했으나 율곡의 본향이 파주임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갈 것이다. 앞으로 자운서원 고증 및 복원을 통해 안동 도산서원과 영주 소수서원에 버금가는 대한민국의 대표 서원으로 자리 매김토록 할 계획이다.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율곡유적지의 국가지정 문화재로의 승격은 소중한 우리의 역사를 다시 일깨우는 커다란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이 인 재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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