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직교체계 도시는 산업사회를 위해 제안된 도시의 형태이다. 산업구조와 이동 수단, 도시의 팽창을 감지한 미래도시 제안이었다. 20세기 초 서구의 건축가들은 주거 중심의 전원도시와 함께 산업도시 이상향을 스케치하고, 직교가로 밑그림에 건물을 채워 넣기에 분주했다.
이후 후기산업사회에 들어와 도시 전문가들은 인간이 소외되는 산업도시의 문제를 직시하고 일상공간에서 이웃 간에 서로 자연스런 만남이 일어나는 친밀도시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심재생으로 유입돼 밀도 높은 도심 모습으로 왜곡되어 표현되고 있다. 도로는 더 넓어져 사람 간 접촉은 더 어려워지고, 고층복합화는 이론과는 달리 이웃 간의 만남보다는 편의성의 극대화로 사람들은 서로 더욱 타인이 되어간다.
디지털사회는 근거리 사람들도 온라인으로 만난다. 접속은 있고 접촉은 점점 감소한다. 모두가 타인인 도시는 서로의 무관심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21세기 도시는 지식기반 정보화사회가 요구하는 도시의 모습을 꿈꾸며, 다시 진화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을 분산시켜 지방도시를 살리자는 혁신도시사업은 각 지역의 특성을 살려 매력 있는 따뜻한 환경을 제안해야 사람들이 유입될 것이다. 살고 싶은 도시는 이제 편리한 도시가 아니라, 공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을 수 있는 고향 같은 친밀한 도시다.
현대유목민들의 이상도시의 조건은 타향에서도 고향의 정취를 느끼고, 사는 동안은 고향으로 마음 붙일 수 있는 도시일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사들어가면서 마음은 벌써 다음 이주를 생각한다. 다 같이 타향에서 만나 고향을 만들어 가는 이상도시의 조건을 찾아야한다.
더 이상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지 않고 차분히 정주할 수 있는 안정된 사회를 위한 도시로 치유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 전 소설가 김훈은 건축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모두 고향을 찾아 명절에는 대이동을 하지만 고향은 개발되어 사라졌고, 현재 살고 있는 타향의 모습과 똑같아 현대 한국인들은 허구 속 고향만 있는 고향상실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고향상실이라는 단어가 아직 내 머리를 흔들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을 고향으로 만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마침 여러 도시에서 시행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은 이웃들이 친밀해지는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고향 같은 정감 있는 도시만들기 사업으로, 도시 전역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산업사회의 천편일률적인 도시모습에서 탈바꿈하여 도시의 개성 찾기 작업으로 확대해 각 도시마다 이상향이 다양하게 그려져야 할 시점이다.
보통사람이 주인공인 현대사회에서 일상의 거주자들이 바라는 도시조건에 귀 기울여 건축가들은 새롭고 혁신적인 이상도시 제안보다는 모두가 고향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머무르는 숙성된 도시모습을 그려 보아야 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보면 해답이 나올 것 같다.
김 혜 정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한국여성건설인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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