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는 거동이 불편한 딸을 보며 숨져 있었다 이천서 불길 속 90대 치매 노모 구하려던 60대 딸 함께 참변
“요양원 모시자”는 가족 의견 뿌리치고 5년째 수발
효심 지극한 딸로 동네에 소문… 안타까움 더해
부모를 버리기까지 하는 반인륜적 현대판 ‘고려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치솟는 불길 속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90대 노모를 구하려다 함께 숨진 60대 딸이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5일 오전 7시10분께 이천시 중리동에 위치한 한 단층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귀가해 잠시 안방에서 TV를 보던 L씨(70)·O씨(여·67) 부부는 주방과 거실 쪽에서 연기가 안방으로 스며든 것을 목격했다.
불이 난 것을 직감한 부부는 동시에 일어나 O씨는 어머니가 계시는 방으로, 사위인 L씨는 불이 난 주방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불은 순식간에 겉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노모 K씨(91)가 있던 방은 연기에 휩싸이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평소 거동이 불편한 딸은 노모를 데리고 나오려 했지만 연기에 질식돼 그 자리에 쓰러졌다. 사위인 L씨는 주방에서 번진 불길을 잡지 못하자 장모와 아내 만이라도 구하기 위해 장모가 있는 방으로 가려고 했으나 이미 불길이 번져 장모가 있는 방까지 가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 됐다.
화마에 휩싸인 집을 바라보며 울부짖던 사위는 이웃들의 손에 붙들려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장모와 아내는 결국 생을 마감했다.
이 불로 단층주택(96㎡)은 전소됐으며 1시간 만에 진화됐다.
화재진압 후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 2구 중 노모는 딸을 바라보고 누운 채 발견됐다.
이웃 주민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자녀 없이 단 둘이 살아오던 L씨 부부를 금실이 좋기로 소문난 효녀 부부라고 말하며 더욱 안타까워 했다.
이들 부부는 10년여 전부터 치매를 앓던 노모를 요양원으로 모시자는 가족들의 의견을 뿌리치고 5년 전 집으로 모셔와 직접 수발을 들었다.
이웃 주민들은 “치매를 앓는 90대 노모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왔는데 하늘도 무심하게 모녀를 함께 데려가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화재 진압 후 내부를 살펴보니 딸과 노모가 같은 방안에서 숨져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다리가 불편했던 딸이 노모를 데리고 나오려다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해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경찰은 주방 등 거실 쪽에서 전기누전으로 인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이천=김동수기자 ds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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