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디자이너의 '인생2막' …인재와 미래를 디자인하다
20대 숙녀가 된 그는 국내외 대기업에서 활동하는 한편, 1996년 패션의 나라 이탈리아 명문패션학교 ‘세꼴리’, ‘아카데미아 이탈리아나’와 국내 유일 독점 라이선스 및 파트너를 체결한 주얼리·패션·액세서리 디자인 교육기관 ‘모다랩’을 설립한다.
세계 유명 브랜드 기업에서 근무하는 한국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등 남다른 성과를 거뒀던 그녀가 이제 또 다른 길을 걷는다. 디자이너 교육 부문의 선구자에서 착한 기업의 CEO가 새로운 목적지다. 그 주인공은 보석만큼 오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안동연 모다랩 학장이다.
-보석 디자이너와 모다랩, 대중에게는 아직 낯설다. 직접 소개한다면.
▲순수미술을 공부했던 중학생 때 아버지가 데려가신 살바도르 달리 전시회에서 어두운 가운데 빛을 발하는 보석에 매료돼 주얼리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됐다. 꼼꼼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반짝이는 광채를 좋아했던 기질이 조용히 혼자 작업하는 보석 디자이너와 잘 맞았던 것 같다.
현재 주얼리 브랜드인 ‘안소니 앤 테스’와 주얼리·패션·액세서리 디자인 사설교육기관인 모다랩을 운영하고 있다. 모다랩은 16년간 이태리 현지 커리큘럼 및 교수진을 상호 공유하는 차별화된 교육기관이다. 고등학교 졸업자면 누구나 입학 가능하고 이수 후 이태리 현지 디자인 사립학교에 자동편입 및 예술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아르마니, 베르사체, 돌체 앤 가바나, 프라다, 구찌 등 유명 브랜드에 졸업생이 취업해 있어 뿌듯하다. 모다랩 학장 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이 밖에 패션쇼를 비롯한 각종 행사를 기획 주관하고 있다.
▲15년 전 국내 대학에 주얼리 전공학과가 없었다. 당연히 해외와 연결된 교육기관 한 곳 없었다. 선진화된 디자인을 넓게 보고 안목과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이태리 학교와 독점 계약하고 이태리 디자이너 경향을 한국에 알리는 한편 국내 디자이너를 육성해서 현지에 자동 편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국에서 교육 받으면 100% 편입가능해 학비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현재 10년 이상 이태리 현지에서 활동한 디자이너도 있는데 이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환원한다. 이 졸업생들을 보면 어느 정도 설립 목적을 이룬 것 같아 기쁘다.
-국내 대학의 관련 학과 편성이나 커리큘럼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면 대안은.
▲대학의 교육과 학위도 중요하지만 젊은이의 관심은 취업에 있다. 나 또한 교수로 출강하지만 현재 각 대학의 커리큘럼은 특성화 또는 차별화가 없어 학생들의 역량을 만들어 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취업이 안된다. 게다가 대학에서 한 공부가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없어 더 문제다. 대학에서 불필요한 과목을 가르치고 학생들의 각기 다른 가능성을 끄집어내질 못하니, 절반 가량이 휴학을 결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기업에선 전공자를 뽑아도 바로 쓸 수 없어 힘들고, 학생은 캠퍼스와 취업현장에서 괴리감을 느끼고, 대학은 학생이 떠나가니 어렵다. 3자가 모두 힘든 상황이다.
이제라도 전문화된 교수진을 꾸리고 그에 맞춰 커리큘럼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 해외 디자이너와 대학에서 사용하는 교재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담겨 있어 개인 재산으로 보기 때문에 국내 유입이 어렵다. 때문에 현재 국내에 유포된 관련 교재나 프린트물 대부분이 모다랩이 이태리 현지에서 입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이 프린트물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이제 대학과 교수도 적극적으로 차별화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시장은 커지는데 대학만 정체돼 있어서는 안된다.
-남다른 교육 철학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 제도 중 무상교육에 초점을 맞춘 교육 제도를 반대한다. 오해가 있을 수 있겠다. 어려운 학생을 위해 무상교육을 하고 착한 기업이 도와주는 것은 적극 찬성이다. 하지만 정부의 교육 지원비를 받아 생활비나 용돈으로 쓰면서 공부하지 않는 일부 학생들이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인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데 원칙이 있다면 학생마다 그만의 기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학생이 정말 좋아하는 것, 직업으로 가져갈 수 있는 기질을 찾아주는 네비게이션이 돼야 한다고 본다. 패션, 가방과 구두, 주얼리 등 모두 그에 맞는 디자이너로서의 기질이 각각 다르다.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미처 찾지 못한 특유의 성향을 발견하고 알려주려고 한다. 어떤 직업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만 오랜 시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착한 디자인, 사회적 기업이 대세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이제 그럴 때가 됐고 대세를 따르는 것 뿐이다.(웃음) 지난해 오프닝쇼를 주관했던 아시아모델 페스티벌 시상식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경기도를 패션과 문화의 도시로 육성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 경기도는 무한돌봄이 이뤄지는 도시고, 다른 지역보다 다문화가족과 탈북자가 많다.
세금을 헛되게 쓰지 않을, 우리의 지원금이 꼭 필요한 소외계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월부터 3개월에 10명씩 선정해 디자이너 교육을 무상으로 지원할 계획인데 경기도에 많은 대상자가 있을 것 같다. 이번 무상교육 지원은 일자리 창출까지 이어지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또 문턱 높은 디자인과 디자이너 세계를 대중화할 수 있는 창구이자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 비록 조그마한 사회적 환원이지만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진짜 직업을 찾고 경제적 수단도 확보하게 되는 훈훈한 지원이 되길 바란다. 언론사인 경기일보에서 도움이 꼭 필요한 미래 디자이너를 추천하면 믿고 후원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의미있는 환원이다. 많은 일을 했고, 할 일도 많다. 남은 꿈이 있나.
▲미래사회는 실력사회다. 굳이 대학을 안가도 실력으로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세계적 브랜드에 모다랩 출신 한국 디자이너가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금까지 이태리 디자인을 한국에 알리고 보석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국내 안착시키는 데 노력해왔다
이제 사회적 기업으로 환원하자는 방침을 세운만큼 디자이너 교육계에 반란을 일으키고 싶다.
다음달에 패션쇼와 주얼리쇼를 진행하면 화환 대신 기부금을 받아 어려운 사람에게 재료비를 지급하는 등 불필요한 장학금 대신 진짜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최근 실무 경험 없는 사람이 사이버대학에서 학점 인증을 받아 패션디자이너라고 하는데, 결국 취업과 수료 후 활동에서 판가름난다. 어떤 교육이 진짜 교육인지 보여주겠다. 진정한 교육은 아무런 것도 바라지 않고 학생이 잘돼 미래에 그것을 보여준다면 그걸로 만족하는 것이다. 살면서 이런 일을 했다는 것, 앞으로도 이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 같다. 이와 함께 대중이 보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추는 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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