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이 논을 아십니까?
“다랭이논을 아십니까?”
수도권의 명산인 양평 용문산에서 남한강을 건너면 야트막한 계곡들마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 환하게 웃으며 이방인들을 맞는다. 발길을 양자산으로 옮기면 상촌마을 나무다리 뒷켠 자작나무와 소나무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서성거린다.
행정지명으로 양평군 강상면 대석3리.
마을 안길을 끼고 이어지는 산중옛길 옆으로 대석천이 얌전하게 뒤따라온다. 안쪽으로 묵묵히 앉아있는 정미소는 영화 ‘선생 김봉두’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세월에 무게를 붉은 함석을 머리에 이고 있다.
그 숱한 시간을 거쳐 온 인내가 아름답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옛 고향의 추억들을 주마등처럼 흘려보내며 흙길을 걷다 보면 정겨운 이웃집 담벼락도, 직바구리 울어대는 들녘에도, 개구리 뛰어노는 논두렁에도, 개울을 가로 지르는 송사리 몇 마리도 벌써 손 안에 들어와 있다.
개울 옆 미루나무 옆에 잠시 멈추면 이 마을에서 용이 과연 몇 마리나 나왔을까 세다 보면 어느새 다랭이논이 눈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해 층층이 만든 계단식 논을 뜻하는 ‘다랭이논’. 자욱한 안개를 헤치며 요란한 산짐승들의 나들이 소리가 비탈진 다랭이논을 깨운다. 양자산 기슭에 얼기설기 매달린 나무짐 같은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다가온다.
산중옛길은 세월초등학교로 이어지고 세월마을 구길과 용담천변에서 끝이 난다. 황순원 선생님의 소설 ‘소나기’ 속에나 나옴직한 징검다리가 고된 다리품을 잠시 쉬어가게 한다. 수도권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양평의 다랭이논 넓이는 5천190㎡ 남짓하다.
양평군은 전국 지자체 최초로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역만들기사업’의 일환으로 이 일대 다랭이논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고 있다. 남녘에서는 바닷가 쪽으로 한두 군데 남아있는 다랭이논이 양평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양평군은 다랭이논과 더불어 주변에 산책로(산중옛길)도 조성하고 쉼터와 이정표 등도 설치하고 있다.
전주 이씨 덕천군 파종중 소유인 다랭이논에선 올해도 어김없이 전통모내기 체험행사가 열린다. 모내기에는 이장협의회, 새마을남녀협의회, 주민자치위원회 등이 공동으로 참여, 손으로 직접 모를 내는 이벤트도 펼쳐진다. 모내기가 끝나면 인근 2.5㎞걷기도 이어진다. 개구쟁이들은 어른들의 모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랭이논 앞의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조규수 강상면장은 “다랭이논 손모내기 체험행사에 그치지 않고 가을에 벼베기행사도 병행, 연말에 소외된 이웃을 위해 쓰여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렸을 적 추억이 함초롬히 남아있는 양평 다랭이논으로 오면 타임머신을 타지 않아도 예쁜 동심의 세계로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글 _ 양평·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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