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재·보궐선거가 정국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세 곳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예상대로 새누리당이 두 곳(부산 영도 김무성, 충남 부여·청양 이완구), 무소속이 1곳(서울 노원병 안철수)에서 각각 승리를 거뒀다.
부산 영도와 충남 부여·청양은 기존 새누리당 의원 지역이었고, 서울 노원병은 진보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 지역이었기 때문에 여야가 전체 의석수에서는 재·보선 전과 큰 변화가 없다.
새누리당은 154석을 다시 확보했으며, 민주통합당은 127석,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은 각 6석으로 변함이 없고, 무소속은 7석으로 늘었다.
하지만 새누리당 친박(친 박근혜)계 핵심이었던 김무성 전 원내대표, 이완구 전 충남지사, 무소속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 등 여야 거물의 원내진입으로 여진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특히 민주통합당의 참패와 ‘안철수발(發) 정계개편’이 전망되면서 정국이 급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철수발 야권 정계개편 수면위로
새누리당, 국회의원 세 곳 중 두 곳 승리 ‘안도’
새누리당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이번 재·보선에서 국회의원 세 곳 중 두 곳에서 승리함에 따라 일단 안도하는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이번 선거에서 새 정부 초반 안정적인 국정운영과 북한 도발 위협에 따른 안보의 위중함을 내세운 반면 야권은 불통 인사에 따른 국정 초반 혼선 등을 이유로 ‘정국 견제론’을 주장하며 맞섰다.
하지만 세 곳 모두 선거 초반 여론조사가 막판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고 1위 후보가 그대로 당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김무성·이완구·안철수 등 여야 거물들의 인지도와 지지도가 높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지난해 유력 대권주자였던 안철수의 원내 진입에 대해서는 새누리당내 평가가 엇갈린다.
야권의 분열 양상을 불러와 여권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로 잊혀졌던 안 의원이 여론의 초점을 받으며 정치재기에 성공함에 따라 현 정부에 부담이 되고, 정치적 이슈선점과 정국 주도권이 야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은 ‘5·4’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 뽑히는 민주당 새 대표와 안 의원을 중심으로 부각될 신당 움직임 등 야권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과반 의석 등을 내세워 새 정부 국정과제 추진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선거 결과 154석으로 과반을 유지하지만 오는 10월 재·보선을 통해 과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기 때문에 당내 결속유지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여겨진다.
‘충청맹주’ 이완구 당선자 3선 성공… 수도권 규제완화 걸림돌 우려
김무성 당선자와 도내 의원 관계 주목
새누리당내 결속과 관련, 주목해야 할 인물은 단연 부산 영도에 당선돼 5선의 반열에 오른 김 전 원내대표다. 그는 ‘유력한 차기 당대표 후보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당내 역학관계의 변화를 불러 올 것으로 전망된다.
김무성 의원은 19대 총선 공천(부산 남)에서 탈락했지만 무소속 출마 대신 다른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흔쾌히 도왔고, 대선 때는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일등공신’이다. 또한 대선이 끝나자마자 문 앞에 감사의 글 한 장만 붙여놓고 나서 훌훌 털고 지방으로 내려가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김 의원이 5선에 성공하면서 새누리당 5선 이상은 정몽준(7선), 이인제(6선), 황우여 대표(인천 연수)와 남경필(수원병)·이재오·정의화 의원(이상 5선) 등 7명으로 늘었다. 이중 황 대표를 제외하고 ‘친박’은 김 의원이 사실항 유일하다.
한 때 친박계 좌장으로 불렸다가 세종시 문제로 박 대통령과 멀어진 ‘탈박’ 인사로 분류됐지만 대선 승리와 이번 재·보선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가 차기 대표감 1순위로 손꼽히는 이유는 친박계와 탈박계 뿐만 아니라 비박계와도 두루두루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내 의원 중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3선·김포)과 홍문종 의원(3선·의정부을)을 중심으로 한 친박계는 물론 김문수 지사와 남경필 의원 등 비박계와도 가깝다. 특히 1951년생(62세)으로 김 지사와는 나이도 똑같고, 영문이니셜도 ‘MS’로 표현된다. 김 지사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도내 의원들은 대체로 김 의원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완구,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경쟁하나
재선 의원(15·16대)과 충남지사를 역임한 이완구 전 지사가 3선에 성공하며 여의도에 재진입한 것은 경기도에 다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이 충청지역이다. 특히 이완구 의원은 2006년 7월부터 2009년 말까지 충남지사를 역임하면서 세종시 문제를 놓고 김문수 지사와 자주 충돌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김 지사가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고, 이 의원도 이번에 “큰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터라 작은 충돌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의원이 주창하는 ‘큰 정치·큰 인물’이 차기 대권도전을 겨냥한 것이라면 김 지사와 불가피한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강창희 국회의장(무·6선·대전 중)을 배출한 충청지역에 ‘충청권 맹주론’을 내세운 이 의원이 가세함에 따라 충청 지역의 결집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이 의원이 박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져 청와대 일각에서 ‘원군’을 확보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관심거리다.
대선 패배 이어 재·보선 참패… 5·4 전당대회 새 지도부 부담감
민주당, 재·보선 참패에 ‘흔들흔들’
민주당은 ‘4·24’ 재·보선에서 국회의원 세 곳 중 서울 노원병은 아예 후보를 내지 못하고, 부산 영도와 충남 부여·청양은 참패하는 등 단 한 곳도 이기지 못했다.
부산 영도 김비오 후보 득표율 22.31%, 충남 부여 청양 황인석 후보 16.86%로, 127석의 제1 야당 후보 득표율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당내에서는 “참혹하다”면서 “어쩌다가 민주당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라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초상집 분위기다.
박기춘 원내대표(3선·남양주을)는 재·보선 다음날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재·보선 결과를 겸허하고 무겁게 받아들이겠다. 민주당은 127명의 의원들 모두 저마다의 무거운 책임을 감당하면서 처절하게 성찰하겠다”며 “무엇보다 첫 번째 더 낮고 겸하한 자세로 당의 변화와 뼈를 깎는 혁신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대선 패배 후 호전되기는커녕 더욱 차가운 민심을 확인하자 대대적인 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 이상 계파갈등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며 형식적인 반성으로는 돌아선 민심이 회복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 셈이다.
이번 선거결과는 ‘5·4’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 선출되는 대표와 최고위원 등 지도부에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무소속 안 전 교수가 당선된 서울 노원병의 경우, 민주당은 ‘범야권의 결집과 연대’ 등을 내세워 무공천 했다.
지난 대선 때 안 전 교수가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해 준 것에 대한 보답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1야당이 국회의원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안 당선자가 민주당과 계속 손을 잡아나갈 지도 미지수다. ‘새로운 정치’가 그의 소신인 만큼 독자노선의 ‘안철수 신당’ 창당이 시기가 문제일 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당 의원 중 몇 명이 신당에 합류할 지가 관전포인트라고 할 정도로 주도권이 안철수 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주류와 비주류가 물밑경쟁을 벌인 전당대회에서 새로 뽑히는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안 의원과 어떤 입장을 취할 지가 1차 변수가 될 전망이다.
대표 주자 중 단일화를 추진한 강기정·이용섭 후보는 주류, 김한길 후보는 비주류이며, 전당대회를 통해 주류·비주류간 계파갈등이 불거질 경우 ‘안철수 영입론’과 ‘안철수 신당론’간 갈등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 신당에 합류하는 인사가 많게 되면 ‘안철수發(발) 정계개편’도 예상되며, 민주당은 크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안 의원은 신당 창당과 민주당 입당·무소속 유지 등 향후 행보와 관련, 민주당 전당대회 결과와 신임 대표의 행보 등을 일단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10곳 안팎의 국회의원 선거가 예상되는 10월 재·보선도 ‘정계개편’ 여부에 적지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민주당이 10월 재·보선에서도 패배하면 정계개편은 가속도를 낼 것이 확실하지만 새누리당이 패배해 현재 ‘여대야소’에서 ‘여소야대’로 바뀌게 되면 민주당이 심기일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기초단체장 무공천 공약 성공 vs 무늬만 무공천 ‘엇갈린 평가’
가평군수, ‘무공천’ 평가 엇갈려
1대 4(여당 성향 후보)의 대결로 치러진 가평군수 선거에서는 무소속 김성기 후보가 당선됐다.
도의원을 사퇴하고 군수 도전에 나섰던 김 당선인은 가평군청에 33년 동안 근무한 적이 있는 행정공무원 출신이다. 재선 도의원 출신으로 역시 도의원을 사퇴하고 군수 선거에 나선 박창석 후보와 접전을 벌인 끝에 7.94%p(2천21표차)로 누르고 내년 지방선거까지 가평군을 이끌게 됐다.
새누리당은 이번 가평군수 선거에 무공천을 단행했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을 무공천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심재철 최고위원(4선·안양 동안을) 등 일부 최고위원들이 강하게 반대했지만 황우여 대표 등이 강하게 밀어붙여 일단 이번 선거에서 무공천을 실시했다.
새누리당의 무공천 평가는 엇갈린다.
새누리당 일각에서 “무공천이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자평하며, 정치쇄신 차원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무공천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반면 김 당선인을 비롯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후보들이 대부분 새누리당 색깔인 빨간색 점퍼를 입거나 혹은 당선되면 새누리당에 입당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지는 등 “무늬만 무소속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에서 이번 선거결과가 기초단체장·기초의원 ‘무공천’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기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에서 여야가 기초단체장·기초의원 무공천에 합의할 지는 미지수다.
이번 선거에서 무공천을 강력 주장했던 황 대표 역시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기초의원 무공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야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어 이번처럼 새누리당 단독으로 무공천을 감행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번 가평군수는 민주당에게는 가평이 ‘무덤’이라는 점도 거듭 입증됐다.
중앙당과 도당이 전폭적인으로 지원을 펼쳤음에도 민주당 김봉현 후보의 득표율은 9.3%로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백재현 도당위원장(재선·광명갑)이 기자회견을 통해 지지를 호소하고, 도당위원장 경선에 나섰던 이원욱 의원(초선·화성을)이 가평에 상주하며 도왔지만 큰 힘이 되지 못했다.
이처럼 민주당이 가평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는,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여주·양평·가평)이 4선을 할 정도로 밑바닥에 탄탄하게 깔린 새누리당 지지기반도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사전투표제’는 일부 투표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나와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사전투표제’는 선거 당일 투표소를 찾지 못하는 유권자들이 부재자 신고를 하지 않고도 미리 투표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전체 12개 선거구의 평균 투표율이 4.78%를 기록했다. 투표율 상승에 일정 부분 도움을 준 것으로 분석됨에 따라 향후 선거에서 ‘사전투표제’가 변수로 부각될 전망이다.
전국적으로 국회의원 3곳, 가평군수 등 기초단체장 2곳, 가평 1·2 도의원 등 광역의원 4곳, 고양마 등 기초의원 3곳 총 12곳에서 치러진 재·보선의 투표율은 평균 33.5%를 기록했으며, 군수와 도의원 2명의 선거가 치러진 가평은 51.1%의 투표율로 전국 평균보다 크게 높았다.
반면 기초의원 선거가 치뤄진 고양마 선거구(고양 덕양)는 전체 선거인 6만4천211명 중 7천329명이 투표, 11.4%에 머물렀다.
무소속 이규열 당선인의 득표수(3천638표)를 전체 선거인과 비교하면 5.67%에 불과해 대표성 논란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글 _ 김재민 기자 jmkim@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연합뉴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