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젠틀맨의 시대정신

싸이의 젠틀맨은 지금 한국의 시대정신을 정확히 반영한다. 최근 모신문에서 젠틀맨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 화제가 되었고 공영방송국에서 심의불가 판정을 내렸다가 다시 복원한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일들은 시대적인 흐름에 대해 여전히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미숙한 일면을 보여준다 하겠다.

비난의 내용 중 하나인 음란성 문제를 보자. 내 아이들에게 이 뮤직 비디오를 보여주지 못하겠다는 취지는 자기 중심으로만 문제를 바라본 것이다. 아이에게 보이건 말건 그건 이 노래의 취지가 아니다. 젠틀맨을 풍자하는 과정에서 여자들과 노닥거리는 한심한 작태를 그저 보여준 것 뿐이다. 아이들도 포르노와 풍자의 차이 정도는 다 구별한다.

요즘 성적인 유모어는 대세다. 그건 시대적 흐름이고 그런 식의 스트레스 해소용 성농담이 얼마나 많이 책으로 나와있나. 가벼운 성적인 개그는 생활의 활력을 주기까지 한다. 성을 음성적으로 취급하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대중오락적으로 유희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이건 어차피 노래고 뮤직비디오일 뿐이다. 여성을 성적으로 유린하는 모습이 나온다면 그건 문제다. 하지만 여자를 골탕먹이는 장면이 곧 여성비하고 유린이라고 볼만한 여지는 전혀 없다. 싸이도 여자에 의해 엉덩방아를 찧고 골탕먹는 사람은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있으며 가인만 음란한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싸이도 음란하기는 매한가지다.

이 노래의 목적이 음란하게 만들기 위한 것인지 신사연하는 위선자들을 비꼰 것인지는 다 안다. 이 노래가 갖고 있는 상류층 비판이 삐닥하다고 흠을 잡는다면 차라리 이해는 하겠다. 그게 이 노래의 핵심을 잘 이해한 것이긴 하니까. 그런 점에서 공영방송심의에서 벌어진 일은 시대착오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주차금지 광고판을 발로 걷어차는 모습이 반사회적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부 지도층들은 표면적인 잣대로만 심의를 한다. 아니면 그들이 이 노래에서 조롱하는 바로 그 대상들이라서 그런가?

적어도 30년전에 ‘백투더 퓨처’라는 영화가 우리 나라에 수입될 당시 웃지 못할 희극이 있었다. 당시 심의위원회에서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 근친상간이라고 해서 불가가 나오자 대사를 다르게 해서 통과된 적이 있었다.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처녀인 어머니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인데 영화에서는 그 여자가 어머니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하게 처리했다. 이게 한국의 과잉반응의 실체다. 웃자고 하는 농담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친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대통령도 풍자하는 영화를 찍어냈다. 영화 ‘광해’의 원조격인 ‘데이브’를 보면 대통령이 백악관의 여직원과 외도를 즐기다 복상사 직전까지 가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 사람들은 이것을 대통령 모독이라 보지 않는다.

한국 지도자들만 심각하게 보고 영화를 규제하려고 한다. 물론 현직 대통령을 모독한다면 그건 안되겠지만 불특정한 가상의 인물을 갖고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나라가 시대에 한참 뒤쳐져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그런 의식으로 어떻게 국제무대에서 무역하고 외교할 수 있겠는가.

싸이의 젠틀맨은 한국이 시대의식에 국제적으로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의미를 준다. 영어 몰입교육을 하면 국제화된다는 식의 무지한 의식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해야 국제시민이 될수 있다는 의식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싸이가 한국어로 노래하고 영어로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게 바로 국제화의 참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 재 형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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