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 다투는 구급차 타보니… 그야말로 '달리는 응급실'
이때 머리 속에 스치는 것은 ‘119’라는 익숙한 숫자의 조합이다.
때로는 혹자에 의한 장난 전화에 곤혹을 치루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생명을 책임지며 365일 24시간 출동대기 상태에 있는 이들이 바로 ‘119’다.
어느덧 여름을 연상케 할 만큼 포근하다 못해 조금은 더운 지난 1일, 수원소방서 119 구급대원의 삶 속에 빠져 봤다.
근로자의 날임에도 불구하고 직업전선에서 뛰고 있는 기자와 소방대원들과의 조금은 처량한(?) 공통점을 위안 삼으며 수원소방서로 향했다.
‘몇 시간을 있어야 하나?’ , ‘혹시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속에 수원소방서에 도착, 119구급대원들과의 짧지만 의미있는 1일 동료 생활을 시작했다.
이교상 소방장(41)을 비롯해 대원들과 간단히 통성명을 나눈 후 구급대원 복장으로 환복하기 위해 탈의실을 찾았다.
주황색 바탕의 긴 티와 검은색 조끼를 걸친 후 검정색 모자를 눌러쓰고 조금은 기대에 차 전신거울로 기자의 모습을 들여다 봤다.
정리가 안된 덥수룩한 머리, 유난히 까메 보이는 피부는 시민을 지키는 용감한 구급대원의 모습이 아닌 배고픔에 허덕이다 빵을 훔치다 걸린 장발장을 연상케 했다.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가운데 청내 방송을 통해 귓가를 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구급 출동!, 구급 출동! 송죽동 노상에 20대 후반 여성 길가에 쓰러진 채 방치’
김도혁 소방사(34)와 박지현 구급대체원(23)이 신속히 자리를 박차며 차고탈퇴 시간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0초.
그들과 대조적으로 ‘어리바리’ 멍 때리고 있던 기자는 누구를 쫓아가야 할 지 몰라 허둥지둥 주변을 멤돌자 김 소방사가 기자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구급차에 올라타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은 작은 응급실을 연상케하는 구급품목들.
바닥 한가운데는 환자를 위한 침대가 놓여져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병원 응급실에서나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이 정리정돈 된 채 자리잡고 있었다.
응급 구급함과 산소통, 혈압계를 포함해 임산부를 위한 분만도구 등 처음 접한 구급차 내부는 아무생각 없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봤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호기심이 발동돼 질문을 시도했지만 손과 얼굴에 장갑과 마스크를 끼며 전화 상으로 신고자로부터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는 그들에게 기자의 질문이 들릴리가 만무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20대로 추정되는 한 여성이 피를 토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대원들은 신속히 활력증후(혈압, 맥박) 측정 후 심전도 모니터링을 실시를 마친 뒤 환자를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렇게 첫 출동이 마무리 됐지만 정작 기자는 차량에 타고 내린 기억밖에 남는 것이 없었다.
오전 11시30분 점심을 먹기 조금은 이른 시간에 대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점심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네요’라는 질문에 김 소방사는 당연하다는 답을 했다.
김 소방사는 “12시 점심시간은 인구 이동이 많아 사고의 위험도 높을 뿐더러 조리 시 화재사고가 발생해 출동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며 “식사도 출동을 대비해 30분도 채 되지 않아 마치는 것이 일상이다”고 답했다.
식사를 마치고 3층 심폐소생실에 가 응급환자에 대한 응급조치 요령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익숙한 상황에 재빨리 기억을 되감아보자 10년도 지난 군 시절 당시 찌는 듯한 무더위에 연병장에서 푸른 군복을 입은 채 휴가증을 얻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심폐소생술을 배웠던 과거 모습이 오버랩됐다.
기억을 더듬으며 마네킹을 대상으로 한 실습이 시작됐지만 시작 10초도 되지 않아 ‘너무 세게 하시면 오히려 환자가 다칩니다’라는 핀잔이 들려왔다.
박 구급대체원의 도움 속에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고 10여분간 소생술을 시연하자 등뒤와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교육을 마치고 쇼파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 이번에는 정자동 한 아파트에 학생 7명이 옥상에 올라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앞 상황과는 달리 구조대원까지 가세하며 현장으로 출동했지만 직감적으로 ‘별거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새빨간 구조차가 아파트 단지 내 들어서자 이를 본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어느덧 현장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심호춘 구조대원(36)을 포함한 4명의 대원들은 허리에 데이지 체인과 구조용 장갑을 낀 채 혹시나 발생할 구조상황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내려오며 오히려 이런 상황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하나의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심 구조대원은 “정말 위급한 순간인지 아닌지는 현장을 와 봐야 안다”며 “단순히 별일 아니라는 안일한 생각이 위급상황에 처한 시민을 더욱 곤경에 빠뜨리게 된다”고 말했다.
오후 4시께, 본 기자의 마지막 출동이 될거 같은 신고가 접수됐다.
장안구 영화동 거북시장에서 한 남성의 낙상사고가 발생, 신속히 현장으로 이동했다.
이번에야 말로 뭔가를 보여주리라는 다짐했지만 현장에 도착해 안면에 피범벅이 되어 얼굴이 찢겨진 한 남성을 본 순간 다짐했던 각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만취상태로 얼굴에 피를 흘리는 남성은 자신의 흰 티셔츠가 붉은 핏빛에 젖는 것도 모른 채 대원들을 상대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풀풀 풍기는 술 냄새, 피로 얼룩진 얼굴에 손을 갖다대는 것 자체에 알러지 반응이 왔지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거부감을 잊으려고 노력하며 환자에게 다가갔다.
평소 인내심과 참을성이 많은 본 기자는 상대의 온갖 협박과 욕설에도 차분히 얼굴에 거즈를 갖다댔다.
씩씩거리던 취객도 조금씩 흥분을 가라앉히며 경계를 풀었고 인근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시키는데 성공했다.
혹시나 칭찬을 받을까 하는 기대감에 강혜진 소방교(32)를 쳐다봤지만 의외의 대답이 날아왔다.
“대원이 그렇게 까탈스러워서 어떡해요, 피가 묻으면 물로 닦으면 되는데…”
평소 까탈스러운 성격이 위급상황에서도 무의식적으로 표출되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상황 종료 후, 1층 안전센터 사무실에서 대원들과 식당에서 가져온 누룽지를 함께 먹었다.
‘이제 슬슬 가야 되나?’ , ‘도움이 되긴 됐나?’라는 생각을 하며 퍽퍽한 누룽지를 삼키려니 속이 더부룩하게 느껴졌다.
구급 증명서를 발급받으러 온 60대 노인으로 보이는 민원인이 옆에 다가와 ‘일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나?’라는 웃음섞인 질문을 던졌다.
누가 봐도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까지 근무한 타 대원들과는 같은 복장을 해도 왠지 모를 어수룩한 티가 나는 모양이었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하루의 체험이 끝나고 일상으로의 복귀 시간이 왔다.
환복 전, 생전처음 입어본 대원복이 어느새 친숙하게 느껴졌다.
구조대원의 내용을 담은 어느 영화에 나오는 남자 배우처럼 대원복이 잘 어울리지도 않았지만, 체험기간 동안 제대로 된 구급활동 한번 펼쳐보지 못했지만, 근로자의 날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구조대원 역할을 마무리졌다.
양휘모기자 return778@kyeonggi.com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