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라뀌엘의 ‘금보여인숙 물고기’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팔부자거리 근방에 금보여인숙이 있다. 이 오래된 여인숙의 방들은 반 평짜리여서 ‘달방’ 사는 날삯노동자들의 따듯한 둥지가 되고 있다. 금보여인숙의 ‘금보’는 ‘금은보화(金銀寶貨)’에서 따 온 듯하다. 그 말에는 여인숙에 든 사람들 모두 ‘부자 되시오!’라는 주인의 속마음이 담겨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10년, 대안공간 눈이 기획한 <행궁동 프로젝트> 에 참여한 브라질의 젊은 여성작가 라뀌엘(Raquel Lessa Shembri)은 이 오래된 금보여인숙의 풍취(風趣)에 매료되었다. 손 글씨로 써 올린 간판의 투박함과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 서 있는 전통식 기와집이 참 신기했다. 더군다나 집의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시멘트 담장을 높게 세웠으나, 담벼락 가운데에 푸른 대문을 달아 안팎으로 열어둔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금은보화의 ‘금보(金寶)’을 물의 근원을 뜻하는 ‘수원(水原)’이라는 도시에 풀어놓아 보았다. 그러자 그 속에서 황금 물고기가 보였다. 물고기 한 마리가 누런 황금빛을 발하면서 헤엄치고 있었다. 라뀌엘은 그 상상 속 물고기를 그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여인숙의 주인아저씨에게 허락을 받은 뒤, 담벼락 우측 끝에 ‘금보’를 상징하는 황금빛 둥근 구슬(원)을 먼저 크게 그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것은 영롱하고 찬란해서 마치 용의 여의주와 같았다.

물고기의 눈은 이 물고기가 신묘한 곳의 신화를 먹고 자라는 물고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와 사람의 눈을 반반씩 섞어놓은 듯하기 때문이다. 아가미 옆에 붙어서 방향타를 조율하는 빨간 지느러미는 ‘금보’라는 붉은 글씨와 어울려서 싱싱하게 살아 오른다.

라뀌엘은 이 아름다운 도시가 물의 도시라는 것에 놀랐다. 도시는 마치 물속에 잠긴 옛 신화지의 근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금보여인숙의 벽에 그가 본 물고기 한 마리를 그렸고, 귀퉁이를 돌아서면 나오는 다른 벽에는 새와 사람들, 그 골목의 판타지를 그렸다. 물고기는 낮이고 밤이고 매홀(買忽)의 골골을 헤엄쳐 다닐 터이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새와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이 번져 나갈 것이다.

라뀌엘은 그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는 그의 세계에서 이 골목을 헤엄치는 물고기와 새와 문어, 사람들을 상상할 것이다. 가끔은 이 세계로 넘어와 수원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순간들을 떠 올리기도 할 것이다. 물고기와 문어는 여기와 거기를 넘나드는 성물일 테니까!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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