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을 찾아보니 이랬다. 민주당 소속 미시간주 하원의원 존 코니어스(John Conyers). 1929년 5월16일생이니까 올해 나이 84세다. 민주당 소속 뉴욕주 하원의원 찰스 랭글(Charles Rangel). 1930년 6월11일생으로 올해 나이 83세다. 공화당 소속 텍사스주 하원의원 샘 존슨(Samuel Johnson). 그 역시 1930년 10월11일생으로 83세다. 이순(耳順ㆍ60)을 넘기고, 고희(古稀ㆍ70)도 넘기고, 희수(喜壽ㆍ77)도 넘긴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미국 의회를 지키는 현역이다.
한국전 참전 美 현역의원
그들의 전쟁, 6ㆍ25는 62년 전이다. 현충일에 틀어주는 흑백 필름이나 봐야 ‘그때 전쟁이 있었구나~’싶을 정도다. 그 영상 속 발가벗은 아이는 우리 동(同)시대의 인류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조선 왕조 시대 쪽에 더 가까이 살았던 조상쯤으로 여긴다. 바로 그 전쟁에서 탱크 몰고, 총 쏘던 군인들이다. 그들이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현역의원으로 소개를 받고 있다. 소개하는 사람은 그 전쟁 이후 18년이나 대통령을 했고, 34년전에 숨진 사람의 딸이다.
이런 장면, 우리 정치에선 절대 볼 수 없다. ‘50-고참(古參)’ ‘60-원로(元老)’ ‘70-고려장(高麗葬)’ 소리 듣는 게 한국 정치다. 18대 총선을 앞두고는 ‘정치 정년’이란 단어도 등장했다. ‘나이 많은 의원 그만 두라’며 드러내놓고 면박줬다. 그때 나돌던 ‘고려장’ 명단엔 문희(72), 김용갑(72), 이강두(71), 이재창(72), 박종근(71), 이용희(77), 유재건(71) 등이 들었다. 모두 ‘우리에겐 경험이 있다’고 항변 했지만 소용 없었다. 선거판을 뛸 자격-공천-마저 박탈당했다.
이 정도면 나이 보고 후려치는 냉정함만큼은 세계 1등이다. 더불어 정치도 1등 간다면야 뭐라 할 일이 아니지만. 그게 아니다. 유독 젊은 초선이 많았던 국회가 17대다.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63%인 187명이 초선이었다. ‘제1당’의 초선은 152명 가운데 71%인 108명이다. 대개가 ‘386’으로 대변되는 젊은 사람들이다.
역동성에 꿈틀대고 신선함에 설렜어야 할 17대다. 하지만 그때를 ‘좋았던 4년’이라고 평해 놓은 기록은 거의 없다. 그 중심에 섰던 ‘제1당’은 5년도 못 가 국민의 외면 속에 당기(黨旗)를 내렸다. 이제는 ‘젊고 경험 없는 자들의 실험과 충돌이 난무했던 17대’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 고려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18대 총선(2008년)도 그랬고, 5기 지방선거(2010년)도 그랬고, 19대 총선(2012년)도 그랬다. 흐름대로라면 내년 6기 지방 선거도 그럴 것이다. 내걸 명패는 ‘공천개혁’이지만 칼날이 향하는 곳은 고령(高齡)ㆍ다선(多選)일 것이다. 경험 많은 정객(政客) 몇이 밀려날 것이고, 능력 있는 재선(再選)몇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젊은 풋내기들이 그들만의 혁신-보는 시민에게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을 또 시작할 것이다. 이쯤 되면 패착으로 결론난 실험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고령 퇴출이 곧 정치 패륜
젊은 패기가 뚫고 나갈 게 따로 있고 늙은 경험이 풀어 갈 게 따로 있다. 30대가 해야 할 투쟁이 따로 있고 70대가 해야 할 조화가 따로 있다. 서른의 정치인과 일흔의 정치인이 함께 가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고, 조화로운 사회고, 효율적인 사회다. 선거 민주주의 200년에 예산 3조7천억 달러를 다루는 미국 정치도 팔순의 현역들이 너끈히 끌고 간다. 건방을 떨던 라이스국무장관 후보자를 “나는 키신저가 보좌관 할 때부터 상원에 있었다”는 한 마디로 겸손하게 만든 것도 조 바이든의 ‘36년 경륜’이었다.
우리네 70ㆍ80대라고 다르지 않다. 너끈히 시장(市長) 할 수 있고 의원(議員) 할 수 있다. ‘나는 늙었다’며 포기하는 후보는 없어야 하고, ‘당신은 늙었다’며 쫓아내는 정당도 없어야 한다. ‘고령 퇴출’의 또 다른 표현이 ‘정치 패륜(悖倫)’이기 때문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공천개혁, 또 고려장(高麗葬) 치를 건가?]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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