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생각의 속도와 손의 속도

‘글을 쓰는 필기구의 변천사는 곧 글쓰기의 변천사이다’라는 게 나의 오랜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붓으로 글씨를 쓰거나, 펜이나 연필로 글을 끼적일 때, 컴퓨터로 글자를 찍을 때 느낌이 다르다. 생각의 속도와 손의 속도에 있어서….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은 살아생전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썼다. 만년필에서 잉크가 흘러나와 원고지를 적시는 걸 손가락 끝에 피를 묻혀가며 바위에 한 자 한 자 새기는 것 같다고 하였다. 단단한 바위를 쪼아 글자를 새길 날카로운 정 같은 쇠붙이를 갖지 못해 그렇다면서….

아직도 펜으로 글을 쓰는 걸 고집하는 작가가 많다. 이른바 수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특히 유명한 이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 그는 모든 글을 원고지에 만년필로 한 자 한 자 한 자 적어 나간다. 그렇게 쓴 원고지가 자신의 키를 넘는다.

사실 수제품에 명품이 많다. 악기나 가방 같은 것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영화가 나왔어도 연극이 볼 만하듯이, 오토바이가 나왔어도 자전거가 탈 만하고 텔레비전이 나왔어도 라디오가 없어지지 않듯이, 컴퓨터가 나왔어도 여전히 원고지에 펜으로 글쓰기를 고집하는 작가가 많다.

한편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컴퓨터로 글을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세상을 뜨기 얼마 전까지 글을 쓸 수 있었을 거라고들 추측한다.

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서 훈장 노릇을 한 초기엔 학생들의 과제 대부분이 손 글씨 원고였다. 그래서 내용을 칭찬할 수 없을 때엔 ‘글씨를 참 잘 쓰는구나’라는 칭찬이라도 할 수 있었다. 물론 악필인 경우는 이런 말도 할 수 없어 난감했지만 말이다.

1990년 대 후반을 지나고 2000년을 넘어서며 본격적인 컴퓨터 시대가 되자 과제는 점차 컴퓨터 작업을 해서 내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물론 컴퓨터로 찍어 매끈하게 인쇄한 게 나도 읽기엔 편했다. 그러나 학생들 개성은 점점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편집 잘 했구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습작을 하고 문예지에 투고를 할 때엔 나도 원고지에 글을 썼다. 그러다가 타자기는 건너뛰고 워드프로세서라는 것으로 글을 찍다가 컴퓨터로 넘어왔다. 지금은 거의 모든 글을 컴퓨터로 찍는다. 컴퓨터로 글을 찍던 초기에도 초고는 공책이나 연습장에 마구 쓴 뒤 정서할 때에만 컴퓨터를 사용하였다. 이때만 해도 컴퓨터가 내 생각의 속도를 못 따라 갔다. 이제는 컴퓨터로 찍어야 생각의 속도가 같아진다. 그런데 비밀스럽게 살짝 말하자면, 지금은 컴퓨터로 글을 찍는 게 너무 빠르다! 그래서 가끔은 두렵다….

사실 컴퓨터로 글을 찍을 초창기에도 시만큼은 신문에 끼어오는 광고지의 뒷면 같은 데에 볼펜으로 끼적거려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산문은 물론 시도 컴퓨터로 찍는다. 볼펜으로 쓴 시와 산문은 컴퓨터로 찍은 것과 분명 다를 것이다. 그래서 그 무렵에 쓴 초고지를 아직도 못 버리고 있다.

남미에 간 어떤 고고학자가 일행과 함께 한참 차로 길을 달린 뒤 길가에서 잠시 쉬었다. 다시 출발하려고 하자 현지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자리에 그냥 앉아 있으며 따라 일어나지 않았다. 고고학자는 조바심이 나서 다시 재촉했다. 그러자 현지인 가운데 한 사람이 앞에 나서며 ‘우리가 너무 빨리 달려와 시간이 우리를 쫓아오지 못해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단다.

붓방아를 찧으며 생각을 기다리던 때가 그립다….

박상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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