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양반문화ㆍ유물로 차별화… ‘치유의 공간’으로 만들고파”
경기도립문화예술기관의 맏형격인 경기도박물관 수장이 된 이원복 신임 관장에게 딸이 던진 말이다. 그것은 질타이기보다, 3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하며 쉼없이 연구하는 아버지를 향한 존경의 또 다른 표현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지난 1976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입사해 공주ㆍ청주ㆍ전주ㆍ광주 등 전국의 국립박물관 관장을 역임했다. 연륜답게 지난 5월 취임한 이 관장은 한달도 채우기 전이었지만 도박물관에 대해 명료한 분석과 운영 계획을 밝혔다. “어머니의 고향인 수원시를 품은 경기도에 마치 운명처럼 불려온 것 같다”는 이 관장을 통해 도박물관의 현재를 살피고 역동적인 미래를 그려봤다.
Q. 경기도박물관 취임을 축하한다. 도박물관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취임하기 전부터 특강과 심의, 연구 등 다양한 이유로 경기도박물관을 자주 찾았다. 낯설지 않다. 물론 전국 국립박물관 관장을 했지만 경기도박물관의 관장이 될 줄은 몰랐다. 어머니가 부르신 것 같다.(웃음) 약점이라면 서울과 가깝고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이 지리적 약점은 다른 지방이 겪지 않는, 도박물관 뿐만 아니라 경기도만의 상대적 약점이다.
하지만 도박물관의 제일 중요한 강점은 소장 유물이 특화돼 있다는 점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특화뿐이다. 청주나 대구, 전주도 이 특화성은 좀 애매하다. 그러나 도박물관은 확실하다. 초상, 도자기, 복식 등 특화된 유물을 간직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조선시대 양반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Q. 이 강점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
A. 초상화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서양이나 중국보다 우리나라가 최고다. 예전에는 초상화가 주로 종교적이었지만 이제는 인간과 가깝고 작품성도 있으며 인문학적으로 풀어나갈 요소를 상당히 많이 품고 있는 작품으로 분류되고 있다. 초상, 그 자체만으로도 연구하고 보여줄 것이 많다는 얘기다. 도박물관이 소장한 각종 복식 자료도 다른 박물관보다 뛰어나다. 이를 기반으로 서울과는 차별화된 특별전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이와 함께 경기도의 역사 속 백제와 고구려에 대해 연구하겠다. 경기도에 있을 흔적을 찾아 재정리하고 역사를 세운 후,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유물을 발굴하는 데 노력할 것이다. 박물관의 존재 이유와 목표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확립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본다.
Q. 박물관에 교육 기능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현실인데, 독자적 교육 프로그램 개발 운영 계획이 있는가.
A. 박물관에는 에듀케이터라는 교육 담당 학예사가 있다. 연구하고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 이를 가르치는 등 세분화된 전문인력이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 학교와도 적극적으로 연계해야 한다. 실제로 이런 연계 수업은 전국의 국립박물관이 공조하는 분위기다. 학생들이 숙제만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기호나 문자 아닌 실물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넓게는 박물관이 성인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기관이 되어야 한다. 박물관 대학이 그것이다. 도박물관은 현재 종교를 소주제로 한 성인 강좌를 진행 중이다. 경기도에는 실학과 전곡 선사 문화를 꿰뚫는 소재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제를 다양화하고 좀 더 재미있는 강좌를 마련해 도민의 호응을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
교육 대상도 공무원부터 직장인, CEO 등으로 확대해 박물관이 공부하면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사교의 장이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전문 인력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A. 항상 조급해서 문제다. 사실 전시는 최소 5년 정도의 주제와 일정을 기획하고 그에 맞는 연구활동을 진행해야 한다. 전시와 연구라는 꽃이 피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한데, 장기적 플랜 없이 진행하다보니 득보다 실이 많다.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를 자문해야 한다.
박물관이 나태해지고 대중이나 시대와 생각의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이 때는 언론에서도 꼬집어야 한다. 관이 주도하는 시대는 끝났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고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지 길게 보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임기 2년이 짧긴 한데, 이 역할이 끝나기전에는 안갈 것 같다.(웃음)
Q. 생각해 놓은 기획전이 있나.
A. 개인적 취향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마시는 차(茶)를 주제로 한 전시를 생각중이다. 차를 주제로 한 책도 낼 예정인데 차에 매료돼 있다. 차는 문학, 사상, 미술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주제로 한 전시가 지난 83년 서울과 2002년 비엔날레에서 진행됐지만 소규모였다. 도박물관이 소장한 도자기를 비롯해 그림과 시문까지 다 포함시켜 대형사고를 치고 싶다. 순회전까지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중앙박물관에 남아있으면 하려고 했던 전시다.
Q. 교육 기능 강화에 전국을 대상으로 한 기획전까지, 할 일이 많다. 그 중 꼭 가장 중요시하는 사업을 꼽는다면.
A. 내가 오기 전 직제 개편이 있었고 학예직 인력이 줄었다. 산에 둘러싸인 도박물관은 외관은 그렇다치더라도 내부 전시 환경은 엉망이다. 관객의 눈높이나 편의성만 따져봐도 문제가 크다. 시대가 요구하는 박물관의 지량점과는 거리가 있다. 이렇게 해놓고 장사(유료 관람)를 하는 것은 바뀌어야 한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광주와 전주의 국립박물관에서 했던 일도 이 같은 리노베이션이었다. 한 두 푼이 들어갈 일이 아니다. 짧은 시간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소 2년 정도 계획을 세우고 후원금도 유치해야 할 것이다. 자문위원이나 후원회도 필요하다.
Q. 경기문화재단이 용인의 뮤지엄파크(경기도박물관ㆍ백남준아트센터ㆍ경기도어린이박물관)로 묶어 행정을 통합 운영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A. 사실 뮤지엄파크라는 개념은 중앙박물관에서 먼저 나왔다. 근접 지역에 문화예술기관이 한데 몰려 있으니 참 좋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각 기관의 독립적인 학예실을 갖춰야 한다. 한 사람이 큰일을 한다. 하지만 처음 본 물건을 전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한 사람이 긴 시간 시행착오를 거쳐 쌓은 경험을 통해 훌룡한 전시와 연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행정은 한 곳을 중심으로 전체를 연결하되, 각 기관 자체는 법인체로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또 전국적으로 박물관 숫자가 늘어나고 좋은 건물을 몇 백원억 들여 세우는데, 유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도박물관은 그나마 기본 소프트웨어를 갖고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앞으로 용인 뮤지엄파크라는 이점을 활용해 재미있는 연계전시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예를 들어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보여주고 도박물관에서는 그의 인생 중 한 부분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의 전시를 하는 것이다.
Q. 마지막으로 박물관에서 평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박물관의 존재 이유를 꼽는다면.
A. 박물관은 과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과거와 미래를 같이 담는 공간이어야 하고, 그것 때문에 존재한다.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물관은 또 쉬는 공간이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추스리고 힘을 복돋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즉, 오락 기능을 갖춘 즐거운 장소이자 치유하는 공간으로 관람객의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복합문화기관이다. 교육때문만이 아니라 삶에 꼭 필요한 장소다. ‘박물관으로 피서오세요’라고 쓴 적이 있다. 앞으로 정말 놀러가고 싶은 박물관으로 밝게 만들고 싶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