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무부지사가 던지듯 자료를 내놨다. A3 용지를 두 장 붙인 크기다. 두툼한 스티로폼으로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표지 제목은 ‘이의 신도시 개발 계획’. 안쪽으로 수원시 이의동 일대 항공사진이 붙어 있었고 그 위로 붉은색 선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었다. 산과 논밭으로 뒤덮힌 이의동이 그 속에서는 완벽히 구획된 신도시였다. ‘좀 빌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 같고, ‘맘대로 써먹으라’고 들었던 것 같다.
‘무슨 요일에 쓸까’ ‘어떤 제목으로 갈까’…. ‘개발 특종’을 손에 넣은 그때의 흥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2~3일쯤 지나 신문 1면으로 보도했다. 당연히 3면에는 총천연색의 ‘이의동 개발 상세도’가 실렸다. 그 후로 10여년간 ‘꿈의 도시’로 불리게 되는 광교신도시의 첫 조감도가 세상에 나온 순간이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기대와 환영 일색이었다. 시민단체조차 성명서-지금도 그들의 사무실 어딘가에 꽂혀 있을-에서 ‘환경문제에 신중하라’는 간단한 조건만을 달았다.
최초의 지자체 도시개발
그런데 여기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찜찜한 비화가 있다. 보도 며칠 뒤 조감도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인물이 나타났다. 주택공사 경기본부의 정○○ 부장이다. 경기도 일대 개발을 총괄하는 인물이다. 이의동 같은 노른자위를 그냥 보아 넘길 그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보고 있었고 이미 조감도까지 그려놓고 있었다. 이를 눈치 챈 한 부지사가 안면 있던 정 부장에게 ‘잠깐만 보자’고 빌려왔는데, 이것이 경기도발(發)로 바뀌어 언론에 흘러든 것이다.
“아는 검사님한테 물어봤는데, 이건 절도래요.” 자료를 빼앗긴(!) 정 부장은 수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한 부지사를 찾아가 말없이 앉아 신경전도 벌였고, 가을비를 우산 없이 맞으며 언론사 김○○ 부장에게 부탁도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지난 2002년 그때의 여론은 용인 난개발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주공입장에선 ‘신도시’의 ‘신’자도 꺼내기 힘든 때였다. 여기에 ‘경기도 개발은 경기도민의 손으로’라는 명분까지 더해졌다. 이의동 개발은 경기도의 몫이 됐다.
그로부터 11년.
그 도시가 휘청대고 있다. 2016년 완공하겠다던 도청사는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68층 규모의 초대형 랜드마크인 에콘힐도 좌초됐다. 강남까지 너댓 정거장이라던 신분당선 연장선은 2년째 지연되고 있다. 북수원~상현 IC 간 도로도, 광교~동수원 도로도 다 감감무소식이다. 백화점, 호텔, 문화시설, 글로벌 기업은 분양 광고 ‘찌라시’(전단)에만 남아 있는 그림이다. ‘꿈의 도시’가 아니라 ‘꿈만 꿔야 하는 도시’다.
폭발한 입주민들이 개발주체인 경기도를 겨냥하고 있다. 도지사는 ‘돈 없어서 청사 못 짓겠다’고 한마디 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사기 사건의 피고발인이 됐고, ‘도지사 구속하라’ ‘주민 소환하겠다’는 우악스런 소리까지 들었다. ‘에콘힐 책임져라’ ‘기반 시설 확충하라’ ‘학교 늘려라’ ‘방음시설 설치하라’…. 십수 가지의 민원이 지금도 도지사 책상위로 올라가고 있다. 다른 신도시 같으면 토지주택공사 정문으로 몰려갔을 입주민들이 경기도청 정문에 진치고 있다.
신도시의 성패가 어디 한두 요소로 결정되겠나. 시기(時期), 조건(條件), 정책(政策)이 복잡하게 맞물려 가는 고차함수 같은 거다. 광교신도시 사태도 보는 이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결론만은 욕 들을 각오로 남겨 놓을까 한다. 애초에 행정기관이 끼어들 일이 아니었다. 예산을 몽땅 털어 주식시장에 투자한다면 그건 도박이다. 마찬가지로 이의동 380만평을 깎아내 집장사에 나선 것도 도박이었다.
하지 말았어야 할 ‘도박’
지금이었더라도 그랬을까.
한 쪽(주공)은 부채 비율 466%에 하루 123억원씩 이자를 내고 있다. 다른 쪽(경기도ㆍ도시공사)은 부채비율 321%에 하루 3억8천만원씩 이자를 내고 있다. 단언컨대 사정이 이랬다면 한 부지사와 정 부장 간의 ‘조감도 쟁탈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서로 맡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을 게 틀림 없다. 누군가는 꼭 해야만 했던 일도 아니다. 경기도가 안 할 거고 주공이 못할 거면 그냥 놔두면 되는 땅이었다. 그 모습 그대로도 풍광 좋고 공기 좋은 이의동이었다.
이제는 어디 가서 얘기하기도 민망해진 11년 전 ‘광교 신도시 조감도 쟁탈전’. 돌아보면 조감도를 빼앗은 한 부지사나, 돌려달라던 정 부장이나, 좋다고 받아 쓴 김 부장-필자-이나 다들 쓸데없는 짓을 한 거였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최초의 광교 조감도 - 그 11년 전 반성을]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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