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는 이런 고소사실을 7일 공개했다. 신임 사장의 취임식을 사흘 앞두고서다. 공교로운 건지 절묘한 건지, 아무튼 시기선택이 그랬다. 마침 신임 사장이 경기도 부지사 출신이다. 공직 임기를 마치고 막 사장에 취임하려던 참이었다. 이런 때 노조가 경영진을 고소했고, 그 이유라면서 ‘공무원 회전문 인사’를 얘기했다. 의도 했건 안 했건 신임 사장 길들이기만큼은 제대로 먹혀든 듯하다.
한가롭고 책임감 없고
이를 지켜보는 도민들은 화가 난다. 지금 도시공사는 노사간 힘겨루기할 때가 아니다. 고소장 들고 여론몰이 나설 때도 아니다. 짊어진 빚만 8조4천357억원이다. 하루 3억8천만원씩 이자를 물고 있다. 미분양 택지도 2조7천500억원 어치에 달한다. 갚아야 할 돈, 물고 있는 이자, 팔아야 할 택지가 전부 도민의 혈세(血稅)다. ‘고소했다’고 자료 낼 시간이 없고, ‘잘 못 없다’고 반박할 시간 없어야 정상이다.
전직(前職) 공무원 탓, 비(非) 전문가 탓도 그렇다. 오국환 사장(2002년 취임)은 토지공사 부사장 출신이다. 분당신도시 사업처장으로 신도시 개발을 담당했다. 이한준 사장(2008년 취임)은 한국교통연구원 부원장 출신이다. 도시계획 전문가로 대심철도(GTX)도 그의 아이디어다. 이재영 사장(2011년 취임)은 국토부 실장 출신이다. 국토 전도(全圖) 위에 백년대계의 ‘선’을 직접 그리던 사람이다.
이만한 전문가들이 없다. 지나간 광교 신도시 10년도 어찌 보면 그들의 개인 역량에 업혀온 바 크다. 오국환 사장은 시중 은행을 엮어 펀드를 조성했고, 이한준 사장은 광교 출장소에 진치며 분양을 책임졌고, 이재영 사장은 마무리에 입주까지 도맡았다. 매 고비 이런저런 비판에 처하기는 했지만 그 논리 어디에도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공무원 출신이기 때문에’란 지적은 없었다.
유독 공사 내에서만 툭하면 ‘공무원 출신 탓’이 나왔다. 그리고 하필 지금-경영 위기고, 분양 안 되고, 광교 폭발 직전인-에 와서 고소까지 갔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의도라도 있는 건가. 혹시 사장 자리가 아닌 중간 자리에 대한 또 다른 셈법이라도 있는 건가. 그 속내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저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도시공사의 한가로움이 한심할 뿐이고,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는 무책임이 걱정스러울 뿐이다.
공교롭게 그 며칠 전 광교 에콘힐이 무산됐다. 그 지경이 되기까지 도시공사가 무엇을 했다는 얘기는 없다. 주관사인 대우의 사장이라도 찾아가 담판을 했어야 옳았지만, 그런 얘기도 없다. 되레 3천억짜리 역(逆) 소송을 당하느니 마느니 하는 처지다. 1천115억원짜리 세금폭탄을 맞은 엊그제도 그랬다. 이 정도면 공사가 휘청거릴만한 일이다. 이때도 국세청으로 달려가 조치를 취한 건 도청 관계자였다. 도시공사가 아니었다.
도민의 노기 한계 달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 경기도시공사는 광교 개발과 분양의 법률적 책임자다. 광교 사무실 옥상에 ‘ㄷ’자형 전망대. 거기에서 ‘저쪽엔 법조타운 들어오고, 이쪽엔 도청사 들어온다’며 약속하던 사람이 도시공사 사장이었다. 최첨단 시설로 치장된 1층 전시관. 거기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여기가 에콘힐 들어올 자리다’라며 홍보하던 사람도 도시공사 직원이었다. 사기분양의 죄가 된다면 피고인석의 주인은 그 사람들이다.
이런 걸 안다면 그렇게 못 했을 거다. 한가롭게 ‘회사 단합대회’ 탓할 수 없었을 거고, 무책임하게 ‘월례 조회’ 탓할 수 없었을 거다.
얼마 전 임한수 도의원(민주ㆍ용인)이 ‘이럴 거면 도시공사 문 닫으라’고 했던데…. 일거리가 널려 있으니 폐업해서도 안 되고, 빚이 깔려 있으니 폐업 할 수도 없다. 아마 부채 숫자 8조원을 읽다가 부화가 치밀어서 한 소리일 게다. 도시공사를 향하는 도민의 노기(怒氣)가 딱 그만큼이다. 그러면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나태해진 조직이니 긴장감을 줘야 하고, 책임감 없는 조직이니 책임질 직원들을 넣어야 하는 거 아닌가. 조직개편이란 제도는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김종구 논설실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