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맛, 막국수
유난히 무더운 올해 여름. 으스스 한기가 돋는 시원한 막국수 한그릇을 즐길 수 있는 춘천막국수.
뭐니 뭐니 해도 여름밤 별미는 단연 삶은 돼지고기 편육과 함께 먹는 메밀국수 맛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메밀국수, 곧 냉면(넓은 의미에서는 막국수도 포함된다.)을 여름철 음식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겨울철 음식이었다.
고 신태범 박사의 저서 <먹는 재미 사는> 에도 “냉면은 그때도 겨울 음식인 평양냉면을 표방하고 있었으나, 국수와 곁들이가 비슷할 뿐 국물은 동치미가 아니라 육수였다. 특히 당시로서는 귀물이던 얼음덩어리가 들어있는 것이 신기했고, 사철음식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먹는>
거두절미, 짧게 인용했기 때문에 독자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시겠지만, 신 박사의 글 속에서 “그때도”라고 지칭된 1910년대서부터 193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까지 평양식 ‘메밀국수’ 혹은 ‘국수’가 인천 땅에서 인천식 ‘냉면’으로 진화한 상황을 읽을 수가 있다. 주요 진화 내용은 우선 동치미에서 육수로 바뀐 냉면 ‘국물’과 아무 때나 먹을 수 있게 된 ‘시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이렇게 냉면의 육수나 먹는 시기를 변화시킨 결정적인 요인은 항도 인천 땅에는 어획물 보존을 위한 제빙공장의 얼음이 많았다는 것, 또 인천에 입항하는 외항선이나 일인들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문을 연 도살장과 거기에서 나오는 소뼈, 내장 등의 부산물이 흔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냉면의 수요가 사철 끊이지 않았다는 점 등일 것이다.
이렇게 인천 땅에서 여름철에도 메밀국수를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아마 찬 국수를 뜻하는 ‘냉면’이라는 이름이 처음 생겨나 불리기 시작한 게 아닌가도 싶다.
사족. 결국 이 ‘인천 냉면’은 “1932년 인천미두취인소가 폐쇄되고 전시 경제에 따르는 규제가 강화되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고 말지만, 그 20년 남짓한 동안에 소문과 함께 각지로 전파되다가 광복과 6·25를 겪으면서 전국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름철 음식으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냉면의 원조는 이렇게 인천에서 진화했으니 인천이 냉면 식문화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 바뀌었어도 맛·재료 변함없어
앞서 말한 <먹는 재미 사는> 는 1989년 뛰어난 미식가로 유명했던 신 박사께서 해박하고 맛깔스럽게 여러 음식과 각종 식미에 관한 내용들을 집필, 출판한 책인데 인천의 향토 음식을 설명하는 편에 이곳 ‘춘천막국수’집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먹는>
“숭의동의 춘천막국수집의 강원도식 막국수와 삼겹살 편육은 강원도 토박이가 인정할 만한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다소 짧은 편이지만 이 집의 특장만을 드러내 보여주는 박사님 식의 아주 간결, 강조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춘천막국수집은 애초 지금 건물 건너편 주차장 자리에 있었고 창업주도 황해도 대북면 출신 이근호씨라는 분이었다. 남하해 춘천에 자리 잡은 이분 모친이 춘천 시장에서 처음 국수집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인천으로 와 몇 군데를 거쳐 지금의 주차장 자리에서 춘천막국수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성업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신 박사께서 글을 쓰신 때는 바로 이분이 장사를 할 때였다. 그 후 현재 주인 김재헌씨 부부가 11년 전에 그 대를 이은 것인데, 김 사장은 이근호씨 바로 옆집에서 15년 넘게 불고기집을 운영한 경력의 소유자다.
양심적이고 온화, 성실한 성품의 김재헌씨 부부는 인수 후에 예전의 맛이나 내용물 함량에 있어 눈곱만치의 차이도 없도록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전한 여기 단골들에 의해 증명되는 사실이니 비록 주인은 바뀌었다 해도, 신 박사께서 앞서 선사한 상찬(賞讚)은 지금까지도 계속 유효하다고 할 것이다.
처음 황해도 사람에 의해 탄생한 이 집은 이제 30년 넘는 전통의 인천 원조 춘천막국수집으로 기록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근호씨의 쌍둥이 형제가 열었던 또 다른 막국수집이 원조라는 설’도 있기는 하다. 거의 비슷한 시기인 1980년대 초 무렵 중구 신생동 소재 중국집 신성루에 나란하게 붙어 문을 열었다가 폐업 후 다시 중구 사동 영진주유소 뒤편 주택가에서 한동안 재기를 노리기도 했었다.
다시 국수 이야기로 돌아가자. 근래 인천의 전통 냉면집들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옹진냉면이니 백령냉면이니 하는 집들이 메우고 있으나 맛은 다르다. 이들 냉면들은 대체로 전분(澱粉)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쫄깃한 맛을 내는데 비해 춘천막국수는 그렇지가 않다. 좀 무뚝뚝하다고 할까. 이빨 사이에서 그저 뚝뚝 끊어지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군더더기 없는 담백하고 개운한 맛이 입에 더 어필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면의 빛깔조차도 다른 냉면에 비해 검게 보이는 까닭에 젊은 층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듯하다.
막국수 육수는 고기국물을 내어 하얗게 만들지만 컵에 따라 주는 물은 메밀을 삶은 진한 흑갈색이다.
이것이 당뇨나 혈압 같은 성인병에 좋아서, 또 숙취를 깨게 하고 간을 튼튼히 한다고 해서, 아침마다 마시러 오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막국수가 나오기 전에 이 물에 간장을 한 방울쯤 떨어뜨리고 겨자도 슬쩍 풀어서 마시면 매우 독특한 음료가 된다. 강원도 토박이만이 아니라 황해도 토박이, 그리고 인천 토박이도 썩 만족할 식미인 것이다.
“접시 귀에 소기름이나 소뿔 등잔에 아즈까리 기름을 켜는 마을에서는 겨울밤 개 짖는 소리가 반가웁다// <중략> //낮배 어니메 치코에 꿩이라고 걸려서 山너머 국수집에 국수를 받으러 가는 사람이 있어도 개는 짖는다//김치 가재미선 동치미가 유별히 맛나게 익는 밤//아배가 밤참 국수를 받으러 가면 나는 큰마니의 돋보기를 쓰고 앉어 개 짖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중략>
서북인 백석의 시 「개」의 전문이다. 국수(메밀국수)를 호식하던 모습과 함께 당시 서북지방 풍정이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남구 숭의동 164-13, 이 집 위치는 숭의동 로터리 하나은행 뒤편 주택가, 또는 현대 유비스 병원 맞은편 골목, 아니면 한국건강관리원 뒷골목이라고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
글 _ 김윤식 시인 사진 _ 홍승훈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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