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깜냥껏 살다 간다

생계형 글쟁이이다 보니 다른 작가들이 글쓰기 전이나 글이 안 풀릴 때 어떤 ‘버릇’이 있는지 늘 새겨 본다. 직업상 자연스레 이는 호기심이다. 다음은 글쓰기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다른 업계에서도 마찬가지이리라 생각되어 공개(?)한다.

먼저 초조 불안형. 이는 글이 안 풀릴 때 이 방 저 방 방문을 열고 다니는 형이다. 의외로 이런 작가들이 많다. 또 어떤 작가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기도 한다. 압박을 먹는 것으로 푸는 형이다.

그런가하면 무작정 배낭을 짊어지고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로 가는 가출형이 있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야 새로운 생각이 찾아오는 형일 것이다. 또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상관없이 글이 안 풀리면 이 작가 저 작가에게 전화해서 두서없는 말을 퍼붓는 수다형도 있다. 이에 반해 조용히 혼자서 일단 술부터 마시는 두주불사형도 있다. 많은 작가들은 글 한 줄 쓰고 담배 한 대를 피우기도 하는데, 보는 이도 짠하다.

그럼 나는 어찌하고 있을까? 술도 못 먹고 담배도 못 피우는 나이지만 남이 나를 관찰해보면, 나도 모르는 이상한 버릇을 발견하고서 배꼽을 잡으며 웃을지 모르겠다. 나는 글이 안 풀리면 책상 앞을 절대 안 떠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일단 어떤 생각이, 이야기가 나를 찾아오면 그걸 어떻게든 수습해 두어야하기에 나는 책상 앞을 못 떠난다. 또 글이 안 찾아오면 찾아올 때까지 내 익숙한 자리인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기다린다. 그렇지 않으면 글 친구가 찾아온 줄도 모르고 정작 내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짓을 하며 지내고 있을지 몰라서다.

이런 점에서 글은 엉덩이로 쓴다고 늘 되뇌는 어느 소설가의 말이 맞다. 또 만년필을 꽉 잡고 잘 쓸 때까지 소설을 쓴다는 소설가의 말도 맞다. 내 경험상 이야기는 책상 앞에 붙어 있어야 하고, 노려보며 기다려야 찾아오더라…. 어떤 일의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회피하거나 도피하거니 외면해선 어려움을 결코 해결할 수 없으리라. 세상만사 다 그렇겠지!

나는, 작가가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며 여행도 잘 안 가고서 무슨 글을 쓰느냐는 힐난 아닌 힐난을 가끔 받는다. 그러면 나는 볼멘소리를 한다. 내가 술까지 마실 수 있다면, 담배를 잘 피운다면, 집 밖을 잘 돌아다닐 수 있다면, 내 체력으론 오히려 글을 쓸 수 없을지 모른다고….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자기 깜냥껏 살다가 가는 것 같다. 나는 글쟁이로서 내 깜냥껏 살고 있다. 그렇게 살다 가면 되리라. 그나마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기에….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는 글을 쓰기 전에 연필을 스무 자루 깎아 놓고 시작하는 버릇이 있었고,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글을 쓰기 전에 당구 한 게임을 치고, 통닭과 감자를 곁들여 아침을 거나하게 먹고 점심 때 다 되어서야(11시 쯤) 책상 앞에 앉았단다. ‘모비딕(백경)’의 작가 허먼 멜빌은 8시쯤 일어나 말에게 아침 인사를 하며 먹이를 주고, 암소한테는 호박 한두 개를 썰어주고, 정작 자신은 아침을 먹지 않고 바로 책상 앞에 앉았다 한다.

요즘 시대는 선배 작가들이 살다 간 시대랑 많이 다르기에 나의 일상도 다르다. 나는 글쓰기 전에 연필을 깎는 대신 전자 우편과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을 보려고 컴퓨터를 켠다. 이어 연락 사항을 확인하고 내가 끼적여두었던 글 가운데에 소재가 될 만하면 가져오기도 한다.

당구나 잡기에 능하지 않아(취미가 없어) 그런 것도 못하고, 도시에 살다 보니 말이나 소 같은 덩치 큰 짐승도 못 키우니 그들 먹이도 주지 않고(그 대신 햄스터라는 몸집 작은 서양 쥐에게 인사를 하고), 창문 밖(베란다) 풀들에게 물을 주며 인사를 하는 정도이다. 아침은 꼭 먹어야 하기에 절대로 건너뛰지 않는다. 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시오리 산길을 걸어 등하교를 했는데, 그때 아침은 반드시 든든하게 먹는 버릇이 생겨서 그렇다. 어쨌든, 이러한 것 모두 내 깜냥이다!

박상률 작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