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최석운의 ‘여행’

여름을 건너가고 있다. 사계(四季)의 한 계절을 건너가는 중이다. 우리는 늘 그렇게 계절을 건너듯이 삶의 한 세월을 지난다. 시간이 흘렀거나 나이를 먹었거나 봄이 가버렸거나 하는 말들의 의미에는 세월의 덧없음과 추억과 낭만이 남는다.

1981년 발매한 산울림 제7집에 ‘청춘’이 실려 있다.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 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세 번 반복되는 가사 사이에 이런 구절이 들어간다. “나를 두고 간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 동산 찾는가.”

어제 그제, 일 년 전, 삼 년 전, 그리고 그렇게 십 년 전이 된다. 최석운의 ‘여행’은 잠깐의 여름휴가가 아니다. 그는 이 그림의 제목에 ‘journey’을 달았다. 그 의미는 ‘특히 멀리 가는 여행’이다. 장거리 여행이다. 왜 그는 작은 종선에 가족의 모습을 그린 뒤 멀리 가는 여행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우리는 저 따위 작은 배로는 결코 항해를 기약할 수 없다. 실개천이라면 모를까, 강이나 바다라면 조금도 못가서 뒤집힐 게 뻔하다. 그런데 그는 저 배로 이미 항해를 시작했다. 망망대해의 한 없이 드넓은 바다를 가로 질러 가는 배를 그려놓았잖은가. 아직 배는 낡지 않았고 가족들도 지치지 않은 모습이다. 아버지는 저 멀리 그들이 갈 곳을 가리킨다. 엄마와 아이 둘은 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다.

현실에서, 가족은 그렇게 세월을 건널 것이다. 망망대해의 세월을 작지만 소박하고 검박한 배를 타고 오붓하게 건너는 것이 가족일 것이다. 아버지는 가족의 캡틴이다. 그는 작은 배를 예쁘게 꾸미고 튼튼하게 여며서 가족들이 풍파를 겪지 않도록 염려하며 이끌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그림을 그렇다고 비장하게 그리지 않았다. 그 삶에서 그가 가장 아끼는 것은 삶의 해학이요, 익살이다.

웃음의 미학을 잃지 않는 삶의 지혜야 말로 우리 시대가 소중하게 가져가야 할 자산일지 모른다. 최석운은 우리에게 말한다. 저 작은 배로도 충분히 세월을 건너갈 수 있다고. 행복의 자산은 그리 크지 않아도 된다고. 정답던 옛 동안은 바로 거기, 저 삶의 배라고.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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