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원의 시대공감]19. 동두천문화원 ‘2013년 백중상머슴 놀이 한마당’

‘백중놀이’ 취지살린 문화소통의 場… ‘기지촌 오명’ 벗고 문화도시 성큼

내가 태어나 자란 골목은 ‘리틀 시카고’라 불렸다. 미군들이 지은 그 이름은 마피아와 갱단이 활약하던 범죄의 도시 시카고에서 따온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노란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빨간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파란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 회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 갈색 얼굴을 가진 사람, 검정색 얼굴을 가진 사람…… 그 사람들이 모두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면 꼭 무지개가 뜨는 것 같았다. 그 골목은 갖가지 색깔을 품고서 오십 년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_정한아의 ‘리틀 시카고’ 본문에서

1962년 기지촌의 대명사 ‘동두천’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중의 한 대목이다. 소설 속 동두천과 소설 밖 동두천은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다. 동두천 전체 면적의 42%( 3천960만㎡)가 미군 공여지다. 이는 여의도의 14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사실상 임야를 빼면 개발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못살던 시절에는 미군으로 인해 잠시 호황을 누리기도 있었으나 62년간 동두천 지역민들은 국가안보라는 명분 때문에 커다란 상처를 받았고,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동안 정체되는 등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도시가 됐다.

재정자립도도 19%에 불과해 경기도내 31개 시ㆍ군 중에 꼴지다. 더욱이 제조업 시설이나 상권이 미약해 고용률은 전국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이러한 열악한 지역경제가 ‘동두천은 문화 불모지’라는 낙인을 더욱 깊게 파이도록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동두천시가 기지촌의 오명을 벗고 문화도시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동두천문화원(원장 안민규)이다.

동두천문화원이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키고 ‘문화 불모지’ 낙인을 벗기 위해 시작한 것이 ‘동두천 백중상머슴 놀이 한마당’이다.

백중놀이는 음력으로 7월15일 백중일(伯中日)에 행해지던 놀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예로부터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전통적으로 백중을 명절로 여겨 가정에서는 차례를 모시기도 하고, 또 마을에 따라서는 동제를 모시기도 했다. 특히 김매기를 끝낸 농사집에서 머슴들의 힘든 노동의 서글픔을 달래기 위해 푸짐한 음식을 차려놓고 노래와 춤 민속놀이를 즐기며 하루를 보냈다. 이러한 백중놀이의 취지를 살려 동두천문화원은 지난 2007년, 2008년 백중상머슴놀이 한마당을 2년 연속 개최했다. 그러나 예산상의 어려움으로 행사는 중단되고 말았다.

안민규 원장과 문화원 직원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시 지원이 중단됐더라도 행사를 방문했던 시민들의 행복한 표정과 감사인사를 받고 이 행사를 반드시 개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예산이 없다고 해서 마냥 손놓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2012년 경기문화재단 우리동네예술프로젝트(커뮤니티 예술 진흥을 위해 31개 시군에서 활동하는 예술단체가 동네와 마을에서 추구하는 예술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사업)에 공모했다. 동두천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사라져가는 백중제의 원형의 기틀을 마련하고 재현보존에 힘써온 동두천문화원의 노력으로 공모사업에 선정돼 사업비를 지원받게 됐다. 이로써 3년동안 중단됐던 동두천 백중상머슴 놀이 한마당 다시 태어나게 된 것.

2013 동두천 백중상머슴 놀이 한마당은 오는 31일 오후 2시 시민공원 야외무대(동두천시 지행동 691)에서 펼쳐진다.

행사는 ▲전통음식먹거리마당(연포국, 누룩술, 두부, 빈대떡) ▲전통민속 문화체험(가훈 써주기, 노끈공예, 한지공예, 투호놀이, 떡메치기) ▲흥겨운 전통문화공연(우리가락한마당, 송서율창, 풍물놀이) 등 먹고, 만들고, 즐길 수 있는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특히 전통음식먹거리 코너에서는 두부나 무ㆍ고기 등을 넣고 끓이는 맑은 장국인 ‘연포국’을 맛볼 수 있다. 동두천에 거주하는 90세의 어르신의 고증을 통해 준비하는 연포국은 세련된 맛은 아니지만 시골에서 할머니가 끓여주던 투박한 토속적인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이 모든 먹거리와 체험이 다 무료로 진행되다 보니 지난해 행사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동두천 백중상머슴 놀이 한마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백중 상머슴선발대회’다. 20kg 가마니 메고 달리기(남), 새끼 꼬기(남여), 물동이 이고 달리기(여) 3개 종목이 개최되며, 현장 신청도 가능하다.

안민규 원장은 “동두천시는 지난 2008년 신시가지 조성 이후 7만 명의 인구에서 9만6천여 명으로 증가한 이후 현재 정체된 상태로 10만 명이 채 안 된다”며 “‘국가안보’라는 명분아래 60여년간 희생해 왔던 동두천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헬기와 탱크의 굉음, 미군들의 잦은 군사훈련 등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 원장은 “우리 조상들이 백중 하루만큼은 즐겁게 여흥을 즐겼던 것처럼 동두천시민들이 잠시나마 열심히 일한 머슴과 농군이 되어 ‘2013 동두천 백중상머슴 놀이 한마당’을 만끽하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문화 불모지’에서 어렵게 싹틔운 ‘동두천 백중상머슴 놀이 한마당’이 경기문화재단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으로 동두천시를 대표하는 문화사업으로 성장해가길 기대해본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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