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정동석의 ‘통일로’

정전협정 60년이다. 우리는 반세기 이상 분단체제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그러므로 가장 뜨거운 시대의 계절일지 모른다. 통일을 향한 국민적 열망이 없는 것은 아니나 통일을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무언가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1983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아니 정전협정 30년이던 그 해에 온전히 이 땅의 풍경이 되지 못한 ‘분단 풍경’을 촬영한 사진가가 있었다. 정동석이 바로 그다.

그가 ‘반反풍경’ 시리즈를 시작했던 1983년은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현상이 한국사회를 자본주의 사회구조로 빠르게 변모시키고 있던 때다. 그래서 그로 인한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도 만만찮았다. 1979년에 발기하고 1980년 10월에 창립한 미술동인 ‘현실과 발언’(현발)은 그런 사회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거나 또는 비판적으로 그리려 애썼다. 그들이 추구했던 실천미학은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현실주의 미학에서 비롯되었다. 정동석은 현발의 유일한 사진작가였고 그도 또한 그런 현실주의 미학을 추구했다.

그는 현발에 참여하면서부터 ‘반反풍경’ 작업을 시작했다. ‘통일로’는 ‘반풍경’ 연작 중 한 작품이다. 그것은 무척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2013년의 현재 상황도 DMZ 사진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진가 이시우가 강화고려산 미군통신시설을 찍은 사진 작품으로 국가보안법에 걸려 재판을 받아야 했던 2007년의 일을 생각하면,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 생각된다. 그런 위험요소를 고려해서 정동석의 <반反풍경> 작품들은 들여다보면 무언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그의 사진들에서는 철책의 총구나 긴장감 따위를 감지하기 힘들다. 어딘지 모르게 철책의 풍경들은 어눌하고 비현실적이며 느릿느릿하다. 시간은 때때로 황량하게 메말라서 거친 샛바람이 아니어도 길가를 뒹군다. 철책이 그어 놓은 대지의 선을 따라 한없이 따라가다 보면 언 듯 무연한 풍경 속으로 몽롱하게 빨려 들어가 버릴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사뭇 몽상적이기까지 한 이 풍경의 질감은 그래서 ‘선禪의 여울’같은 그 무엇이다. DMZ를 두고 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례한 언사인가!

그는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단의 고통과 통일의 간절함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바로 그것이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분단 이후, 반세기 동안 우리 국토의 동쪽 서쪽 남쪽 그리고 북쪽의 DMZ, 즉 네 개의 면은 숨 막히는 대치공간이었다. 그의 사진이 표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말한다. “맞닿아 있는 하늘, 땅, 우두커니 서 있는 철책, 요즈음 난 이것들의 무심(無心)에 눈물이 난다”고.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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