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마지막 한 수까지 집중해보자

온라인 역할놀이게임(Role-Playing Game)을 즐기는 요즘 청소년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바둑이나 장기를 즐기던 세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오목(五目)’이라는 게임을 해보았다.

이것은 ‘바둑판에 바둑돌을 놓아 5개를 먼저 나란히 놓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이 오목의 묘미 중에 하나는, 때로는 실제 오목게임을 하는 사람들조차 자신들의 한 수가 최종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도적으로 바둑돌을 잇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얼떨결에 바둑돌 5개를 이을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오목이 요행으로 이길 수 있는 게임은 아니다. 왜냐하면 오목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끝까지 유지해야만 ‘얼떨결에 주어진 기회’라도 붙잡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잠시라도 집중력을 잃게 되면 자신에게 주어진 결정적인 기회들을 허무하게 날릴 수밖에 없다. 나는 인생도 오목게임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잠시라도 집중력을 잃게 된다면

최근 한 인물이 야구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벤처업계의 신화인 ‘허민’(37)씨다. 1995년에 서울대 응용화학과에 입학한 그는 2001년에 ‘네오플’이라는 게임업체를 설립했다. 그리고 곧 ‘캔디바’라는 게임을 만들어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만, 이후에 출시한 게임들이 모조리 실패하면서 수십억 원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하지만 그는 2005년에 ‘던전앤파이터’라는 게임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마침내 2008년에 ‘네오플’을 3천800억원에 ‘넥슨’에 매각하는 데에 성공했다. 30대 초반에 3천억 원대의 자산가가 된 것이다. 그 이후 그는 대규모로 부동산에 투자를 하더니 갑자기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오래지 않아 귀국했고, 2010년부터 한 벤처기업의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드디어 그가 경영에 복귀하는 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2011년에 국내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를 창단했고 마침내 지난 8월 29일에는 미국 마이너리그의 ‘락랜드 볼더스(Rockland Boulders)’에 투수로서 정식입단했다. 얼핏 보기에는 허 씨의 인생이 ‘오목’이 될 것 같지 않지만, 그는 의외의 각도에서 오목을 즐기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그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야구부에 가입했다.

‘네오플’을 경영하던 시절에는 밤샘작업을 한 후에도 자신이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의 경기만 열리면 장소를 불문하고 뛰어갔다.

그가 ‘던전앤파이터’로 큰 성공을 거두기 직전에 개발한 게임도 ‘신야구’였고, 버클리 음대 유학시절에도 사실 그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너클볼 투수 ‘필 니크로’에게 약 1억원을 수업료로 지급하면서까지 너클볼을 배웠다.

‘고양 원더스’를 창단한 이후에는 2년간 김성근 감독을 수시로 찾아가 투수훈련을 받기도 했다. 마침내 그는 올해 초부터 미국 프로야구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결국 그 꿈을 이루었다.

물론 그의 투구실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나름 너클볼 좀 던진다’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 허 씨가 실제로 뛸 수 있는 경기는 1경기 정도 밖에 안 남았고, 따라서 받는 보수도 15만 원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 기회, 허무하게 날리게 돼

그러므로 과연 그가 이 기회를 더 이어갈지, 아니면 한낱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날릴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팬들은 그가 제레미 린(Jeremy Lin)처럼 ‘민새너티(Min-Sanity)’ 열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여러분의 ‘인생 오목게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우리 모두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정성껏 한 수, 한 수를 두어보자.

김학중 꿈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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