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고딕양식이 이곳까지 전파되었다니, 아스라이 그리운 건 근대유산이다. 순조 때의 신유박해, 고종 때의 병인, 신미양요로 탄압받은 신도들이 피난 온 곳. 1890년 프랑스인 르메르 이(李)신부가 초가 사랑방으로 출발한 한국 4번째 천주교회다. 지금의 교회는 제2대 정규하 신부가 설계하여 고종10년 착공 이듬해(1907) 완공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최초의 교회라고 한다. 예배당의 그림들이며 맞춤법이 구축되지 않은 옛 글씨들도 고풍이 묻어나지만 겟세마네 언덕 가는 십자가의 길은 전생의 죄까지 자백 하고픈 길이다. 이곳에 숨어 와 벽돌을 구워 팔며 살았다는 초기 신자들. 그래서 일까? 무엇보다 아름다운 건 모자이크 식 벽돌로 장식한 진입로다. 샐비어가 상사병 환자처럼 열꽃 핀 몸을 비틀어대고, 들깨 향기 묻어오는 추색 들판위로 높푸른 하늘이 가을엽서처럼 걸렸다. 서정이 무르익는 노향림의 낡은 시집에서 ‘어떤 개인 날’이라는 시 한편을 꺼내어 풀잎처럼 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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