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난 1970년 4월22일 전국 시ㆍ도지사회의에서 처음 제창한 근면ㆍ자조ㆍ협동 정신의 새마을운동은 특히 농촌에 10여년 동안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현대사를 바꿔 놨다. 단군 이래의 보릿고개를 추방한 것도 이때이고 겨울이면 패가망신의 온상이던 동네 주막을 없앤 것도 이 때였다. 불편해도 숙명처럼 살아왔던 마을을 온 부락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살기 좋게 힘 모아 개조한 것도 이 때다.
지금도 시골에 가보면 그 역연한 흔적을 어느 마을이든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당시의 새마을운동 사업이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보세’하는 새마을 노래의 새마을운동은 개발 독재를 지속한 관제운동이라는 일부의 부정적 시각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이렇게 국민운동으로 승화했던 것이다.
새마을운동은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농촌개발 전략이다. 중국?태국?인도네시아 등지엔 이미 새마을운동이 수출됐고 최근에는 미얀마에서 이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 베트남 등 주요 개발도상국들이 배워가는 이 운동은 국제협력 프로그램의 중요 사업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번 동남아 순방 시아세안(ASEAN) 회원국 정상들과의 개별 환담 때도 새마을운동 얘기가 많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 박근혜 대통령은 왜 제2의 새마을운동을 언급했을까? 이를 구심점 삼아 국민통합과 함께 경제부흥을 이룩하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아울러 아버지의 과업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정치적 계산 또한 없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 배경이 다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대를 절대적 빈곤시대라고 하면 박근혜 대통령 시대는 상대적 빈곤시대다. 절대적 빈곤에서는 목표 가치가 단순하며 유일하다. 그냥 배 부르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상대적 빈곤은 다르다. 고기 반찬에 배 부른 것 하고 김치 반찬에 배 부른 것 하고 다르다. 이웃 집은 해외 여행을 떠나는데 우리 집은 국내 여행도 못 간다는 식의 불평 불만은 목표 가치가 사람마다 다르고 복잡하다.
제4공화국 이후 간헐적으로 새마을운동 활성화 노력이 수차 시도됐으나 점화되지 못한 연유가 이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이 국제 프로그램화 됐으나 이를 필요로 하는 나라는 절대적 빈곤을 면치 못한 개발도상국임을 유의해야 한다. 제2새마을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의 새마을운동이 아무리 성공했다 해도 같은 개념으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동기 부여가 달라져야 한다. 시대 배경에 맞게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앞에서 밝힌 것처럼 복잡 다양한 상대적 빈곤에 교과서적 훈화로 동기를 부여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또 하나 유의해야 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유업을 들먹이거나 계승하는 것이 과연 유익하느냐다. 그러지 않아도 대통령을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오버랩 되곤 한다. 이는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운명이다. 분명히 별개의 대통령인데도 오버랩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유업을 딸이 굳이 말하면 정치권에 회자되고 그렇게 되면 일각에서는 좋은 소린 안 할 것이다. 그 분의 공과는 역사에 맡기고 국민의 존경을 받는 박근혜 대통령 고유의 업적이 쌓이길 바라는 것이다.
임양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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