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스케치여행] 동구릉

건원릉, 현릉, 목릉, 휘릉, 숭릉, 혜릉, 원릉, 경릉, 수릉 등 조선의 아홉왕들과 왕비, 계비의 능이다. 비슷하지만 외양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특히 건원릉은 말년에 고향을 그리며 그곳에 묻히기를 희망했다는 태조의 원을 태종이 헤아려 함경도 영흥의 흙과 억새풀을 가져다 봉분에 심었다고 한다. 워낙 높은 능터 위에 있는 봉분이라 가까이선 보이지 않고 멀리서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억새가 우거진 거친 모습이다. 벌초도 않는 듯 불규칙적으로 돋아난 하얀 억새는 망향의 목을 길게 빼고 있다. 아홉 왕들의 능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만추는 벌써 수척하다. 서어나무 숲길에서 문득 이런 시 한편을 가슴에서 꺼내었다. -한로 지난 바람이 홀로 희다/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지는 가을/서오릉 언덕 너머/희고 슬픈 것이 길 위에 가득하다/굴참나무에서 내려온 가을산도/모자를 털고 있다/안녕, 잘 있거라/길을 지우고 세상을 지우고 제 그림자를 지우며/혼자 가는 가을 길 <가을 길, 김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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