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한국, 중국, 일본의 전통음악을 다뤘는데, 중국과 일본의 음악에 보다 많은 시간이 할애됐고 한국 음악은 가장 적은 수업시간이 배정됐다. 중국의 전통악기들을 비롯해서 경극과 곤극, 일본의 노드라마와 샤쿠하치, 샤미센 등의 악기들과 한국의 가야금, 거문고, 대금 그리고 시나위, 판소리 등의 장르들이 다뤄졌다.
수업 내용보다도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세 나라의 음악에 대한 미국학생들의 반응이었다. 학생들은 패왕별희로 유명한 중국 경극의 화려한 의상과 마스크, 현란한 아크로바틱 등을 매우 흥미로워했고, 표정은 마치 서커스를 관람하는 어린이들의 그것과 같았다. 절제된, 때로는 다소 통제된 동작을 사용하고 목을 쥐어짜듯 해 독특한 소리를 내는 일본의 노드라마를 감상할 때는 이곳저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학기 말 한국 전통음악과 판소리를 공부할 때에는 학생들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산조나 시나위 등을 들을 때 이곳저곳에서 “It’s cool!(멋지다)”, “It’s really neat!(정말 굉장하다)”라는 미국 젊은이 식의 감탄이 연발했다.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세 사람이 진도 아리랑을 부르는 것을 5분 고정카메라에 담은 장면에서는 “Beautiful!(아름답다)”이란 탄성이 터져나왔다. 심청전의 심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을 감상한 후 한 미국 여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웬지 모를 감동을 느꼈어요. 지금까지 들었던 중국이나 일본음악과는 달리 제 마음 속에 무언가 직접 와 닿는 호소력이 있는 음악이에요.” 다른 미국 학생들 몇명도 같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중국과 일본의 음악에는 ‘흥미롭다, 재밌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면 한국 전통음악을 듣고는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교수는 한국 음악과 판소리에 가장 적은 시간을 할애한 데에 다소 멋쩍은 기색을 보였다.
우리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국수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게 아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틀린 말이라 할 수 없지만 남의 것이 좋은 것도 알아야 우리 것의 좋음도 더 잘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필자가 아시아 음악이라는 수업시간에 경험했던 것을 한마디로 한다면 판소리를 비롯한 우리의 전통음악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호소력이다.
즉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를 즉시에 감동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 한국의 전통음악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힘이다. 이런 강력한 보편적 호소력을 지닌 전통음악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즉 어떤 비서구 전통음악이 그 문화의 외부인에게 흥미롭기는 쉬워도 감동을 느끼게 해주기는 어렵다. 아마도한국 전통음악에서 그 힘은 민중의 삶 속에서 진한 국물처럼 우러나왔기 때문이며, 한과 흥 그리고 신명 등의 정서가 잘 버무려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는 물론 서양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음악이 늘 고맙고 자랑스럽다. 자랑스러운 전통음악이 있기에 서양음악을 보는 관점도 서양인들보다 폭넓을 수 있다. 필자는 오는 12월1일에 프랑스의 칸(Cannes)에서 프랑스의 한 오케스트라를 객원지휘한다. 프로그램은 대부분 프랑스 작곡가들의 음악으로 돼 있으니 뼈 속까지 한국인인 필자에게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다.
동양인 지휘자에게 듣는 프랑스 음악이 프랑스인에게는 어떻게 다가올까? 어설프게 프랑스인 흉내를 내서는 안될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 한국인으로서 한과 흥 그리고 신명을 버무려 보편적 호소력이 있는 지휘를 해야겠다. 연주복으로는 두루마기나 개량한복을 입어볼까.
양승렬 수원오페라단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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