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의 시작은 20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들인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4개국이 2015년까지 모든 무역장벽을 철폐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한 협상이 바로 TPP다. 그러나 TPP가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의 핵심(PIVOT) 역할을 하기에는 아시아 참가국(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말레이시아)의 경제규모가 부족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충분히 규모가 큰 경제의 참여를 필요로 했으니, 그 상대는 바로 한국과 일본이었다. 마침 일본은 이웃 한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한 것에 크게 자극받은 상태였고, 다시 총리 자리를 되찾은 아베 수상은 대미 관계 회복을 최우선 외교과제로 삼으면서 올 초 TPP 참가를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 역시 미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나, 선뜻 참가에 나서지 못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추측된다.
우선 미국 뿐만 아니라, 한·ASEAN FTA를 통해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말레이시아와 양자 FTA를 맺고 있고 다른 국가들과도 대부분 FTA를 추진해왔다는 점이다. 특히 한미 FTA 추진 과정에서 갈등을 겪은 지 오래되지 않아 다시 대규모 FTA 협상을 함으로써 ‘FTA포비아(공포증)’를 재발시킬 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최근 더욱 첨예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국면 속에서 최고의 관계를 보이고 있는 한중 관계가 자칫 냉각될 수 있다는 지적일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TPP가 사실상 한일 FTA를 의미하고, 경쟁력이 약한 산업에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나름의 해답을 찾은 것이 아닐까하고 짐작 해본다. 우선 우리 사회가 광우병이나 한미 FTA 독소조항과 같이 FTA(또는 시장개방)에 대한 공포증을 상당 부분 극복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측면에서의 우려 요소인 ‘TPP=한일 FTA’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다른 참가국과는 FTA를 맺었거나 협상 중이지만 일본과의 양자 FTA 협상은 2004년말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에 완성차, 고부가 부품·소재와 같은 경쟁이 치열하거나 다소 열위에 있는 제품을 국내에 공급하는 생산자로서 일본과의 FTA는 충분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일본과 TPP 아닌 다른 2개의 FTA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중·일 FTA와 동아시아 16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이 그것이다. 설사 TPP만큼의 포괄적 개방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협상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많은 품목들을 일본에 개방해야 하는 상황이다.
TPP는 이제 더이상 강 건너 불구경 할 상황이 아니다. 설사 미국이 바라는 대로 올해 안에 TPP 협상이 끝나지 않더라도, 이제 관심의사를 밝힌 우리에게는 예비협의-참여선언-참가국 동의의 절차가 남아 있다. 우리가 협상참여와 사후 가입 간의 실익을 따지며 돌다리를 두드리는 동안 저들은 이미 다리를 거의 다 짓고 준공 감리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우스갯 소리라 생각했던 ‘돌다리는 두드려보지 말고 바로 건너라’라는 말에 그다지 웃음이 나오지 않는 건 ‘원-엔 환율 역전’으로 수출사정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 협상참가 결정이 아닌만큼 더이상의 논란과 우려는 지양하고 기존 협상국과의 예비협의를 통해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모아 신속히 국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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