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풍경’

9명의 ‘이방인’, 그 일터와 일상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어느 날 꿈에 떨어져 살고 있는 아내가 나왔어요.

저는 너무 기뻐서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 갔어요.

저는 제주도에 가본 적도 없고 제주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꿈속의 제주도는 너무 예쁘고 멋졌어요(와리우라 브후아이야 / 방글라데시).”

‘풍경’은 필리핀,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등 총 9개국에서 온 14명의 이방인들에게 “당신이 한국에서 꾼, 가장 기억나는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단 하나의 질문과 함께 그들의 일터와 일상의 풍경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풍경’을 찍은 장률 감독은 “이 작품은 내가 해온 작업들 중 가장 따뜻하다고 할 수 있다. 1995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거리의 외국인은 대부분 관광객이었다. 하지만 지금 거리의 외국인 대부분은 노동자다. 나는 그것이 이미 한국의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한국의 풍경이 되어버린 이방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의견을 내비추었다.

‘풍경’은 2013년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를 제의 받아 찍은 ‘이방인’을 주제로 한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작업한 영화다. 당시 그도 가족과 떨어져 한국에서 사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속에 온전히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그들에게 천천히 말 걸기를 시작한다. 이심전심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감독의 마음을 먼저 열었고 그 마음이 스크린에 따스한 체온으로 전달된다.

영화는 인천국제공항을 시작으로 서울 답십리의 부품상가, 이태원의 이슬람사원, 대림동 조선족타운, 마장동 축산물시장, 안산의 목재공장, 염색공장 등까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꾼 꿈에 대해서 묻는다. 그리고 그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풀어 놓을 때까지 카메라는 담담히 기다린다.

“진실 그대로를 담고자 가만히 기다렸다”는 감독은 시종일관 고집스럽게 일하는 노동의 순간을 집요하게 바라보고 그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뒤따라가고 그들이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를 담아내며 그들의 허름하고 허술한 공간들을 공유한다.

화려한 치장 없이 현학적인 수식 없이 보여 지는 그대로의 노동의 현장, 생활의 공간을 카메라는 응시한다. 때론 작업장 유리창에 그려진 코끼리가 고향의 초원을 거닐기도 하고, 정물화처럼 달력 속에 박혀 있는 고향의 바닷가 풍경은 동해 안 바닷가 파도소리로 향수를 달래준다.

장률감독(1962년생)은 옌볜대학교 중국문학과를 졸업한 소설가이자 교수 출신의 재중동포 영화감독으로 서른여덟 살에 단편 ‘11세’를 연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진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첫 장편 데뷔작 ‘당시(唐詩)(2003)’가 밴쿠버영화제, 로카르노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화제를 모았고, ‘풍경’은 그에 아홉 번째 작품이자 첫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2012년부터 국내에 체류하며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강의를 한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는 시(정현종)처럼, 일하는 모습이 행복한 풍경으로 피어나는 영화 ‘풍경’은 우리가 놓치고 스쳐지나 쳐 버린 노동의 진실함과 살아있음의 생명력을 새삼 일깨워 준다.

“꿈에서 만난 아내는 우리 공장에서 만든 옷감을 샀어요. 제가 한국에서 만든 옷감을 고향에서 볼 줄은 몰랐어요. 꿈이었지만, 놀랍고 기뻤습니다”라고 염색 공장에서 일하는 셰르조드 아크바로브(우즈베키스탄)가 들려 준 꿈이 바로 타향살이하는 이방인의 공통된 마음일 것 같다.

12일 개봉 전체 관람가.

곽은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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