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어머니ㆍ맏언니로… 체육계 대모의 ‘인생 4막’ 비인기 종목 하키선수 출신, 새벽시장 점원생활, 그리고 만학의 길…
가녀린 중년 여성의 인자한 웃음 속에서도 확실한 소신과 그 뒤에 풍겨지는 강한 카리스마. 비인기 종목인 하키선수, 그것도 국가대표 경력은 찾아볼 수 없지만 화려한 이력이 말해주듯 한국 여성스프츠계에서 맹렬 여성파워를 내뿜고 있는 신정희(59)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장은 무엇인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전문대 졸업 후 취업할 곳이 없어 남내문 새벽시장에서 점원으로 활동했던 그녀가 만학의 길을 거쳐 여성스프츠회 초대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국내 첫 여자하키 대표팀 코치, 여성 국제심판 1호, 대한하키협회 첫 여성 전무이사,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 전국 첫 통합 고양시 체육ㆍ생활체육회 사무국장을 거쳐며 항상 ‘1호’라는 수식어를 달고 체육 행정가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특히, 현재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장과 국민생활체육회 이사, 대한하키협회와 아시아하키연맹 부회장, 경기도체육회 이사,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 등을 맡아 대한민국 체육진흥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경기도체육회 임원실에서 신 위원장을 만나 체육인으로 걸어온 40여년의 외길 인생을 들어봤다.
Q. 7월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장으로 취임는데 구체적으로 선수위원회가 하는 일은.
A. 대한체육회에는 13만명이 넘는 선수들이 등록돼 있다. 선수위원회는 요즘 대두되고 있는 선수와 지도자의 인권문제를 비롯해 선수들이 은퇴 후 원활하게 사회적응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단체다. 그중 역점을 두고 있는 선수들의 향후문제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은퇴 후 원활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원하고 있다.
한 예로 선수인권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은퇴선수지원사업은 교육을 받고자 하는 선수들에게 2개월간 학원비를 지원, 선수들이 선호하는 직업학원을 다니며 해당 직업에 필요한 전문기술을 습득하도록 돕고 있고 교육과정 이수 후에도 취업 가능한 기관에 선수들이 취업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4명의 멘토를 선정해 20명의 은퇴선수를 멘토 1명당 5명씩 배정, 집중교육을 통해 취업이 성사될 때까지 지원하고 있다.
Q. 최근 사회적으로 선수 인권문제,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폭력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A. 시대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제자를 아끼는 ‘사랑의 매’도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대한체육회 인권지원센터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지도자들이 변화해야 할 때라는 것을 인지하고 그러한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선수, 지도자, 학부모에게 각각 차별화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교육활동에도 불구하고 불미스런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교육에 대한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수의 지도자도 물론 있겠지만, 지도자로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도했는데 이를 선수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소통의 문제인 것 같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지도자들은 아직까지 과거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점을 하루빨리 깨닫고 변화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도 선수위원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지도자들이 기술적 부분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인성교육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A. 물론이다. 요즘은 워낙 훌륭한 강사와 정보가 많아 이를 통해 지도자의 자질, 리더십 등 다양한 인성교육이 가능하다. 선수로서 경기력 향상도 중요하지만, 스포츠도 ‘교육’이다. 기본적인 인성교육이 우선되는 체육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선수위원회도 공감하고 있다.
얼마 전 충주에서 열린 스포츠인권 전문인력풀 워크숍에 참여했었다. 워크숍에 참여한 이유는 과연 교육현장에서 진정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교육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인식을 불어넣어 주고 싶어서였다. 그날 ‘체인지’라는 단어로 총평을 했다.
스포츠에 대한 의식도 과거 낡은 관행도 시대에 맞춰 바뀌어야 하는데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도태될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체육현장이 많이 바뀌고 있지만 좀 더 심각성을 알고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Q. 위원장께선 첫 여성 하키대표팀 코치, 국제심판, 대한하키협회 첫 여성 전무이사 등 각종 1호 수식어와 경험을 쌓았다. 스포츠 분야의 다양한 직책을 맡아오면서 체육행정가로 활동하고 있다.
A. 운동을 그만둔 뒤 사회에 나와서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비인기 종목인 하키선수 이력으로는 설 수 있는 땅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부터 피하지 않고 부딪쳤다. 취직이 안돼서 남대문 새벽시장에서 일한 적도 있다.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이 상황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을 거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의 경험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재 내 인생의 보배로 이 자리에 오기까지 심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개인적으로 ‘나무’를 좋아한다. 미화를 좀 한다면 나무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나무는 어떻게 자랄지 아무도 모른다. 무성한 나무가 될 수 도 있고 가냘픈 나무가 될 수 도 있다. 어떤 나무로 자라든 마지막에는 결국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여러 사람에게 행복을 준다. 나무는 죽어서도 최소한 땔감이 될 수도 있다.
70~80년대 초 만해도 여성 스포츠의 지위향상에 대해 많이 외쳤었다. 이제 현대 사회는 여성의 지위가 높은 수준으로 향상돼 실력을 갖추면 여자들도 어디든 진출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체육계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 하키는 비인기 종목이지만 여자경기 심판은 반드시 여자가 봐야 한다는 생각에서 1호 심판이 됐다. 대표팀 코치가 됐을 땐 지원이 너무 열악해 감독으로 선임된 분이 나타나지 않아 코치인 내가 혼자 팀을 훈련을 시키고 해외 전지훈련을 데리고 다녔다. 지도자의 길이 너무나 힘들어 고민 끝에 국제심판의 꿈을 품고 지도자의 길을 포기 했다.
A. 중ㆍ고등학교 선수시절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면서도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다. 개인 사정으로 제때 대학에 가지는 못했지만, 항상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대학에서 실력을 쌓아 하키인으로서 뭔가를 떳떳하게 해내고 싶다는 나름의 꿈이 있었다.
대학을 나와서 실력을 쌓고 사회에 진출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아이를 낳고 대학원까지 간 이유는 대학생활을 마치면서 공부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고, 당시 모 대학에서 시간강사 제의가 왔었는데 자격이 되지 않아 미래에 대한 준비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부는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Q. 스펙이 화려하다. 고양시체육회ㆍ생활체육회 사무국장 당시 체육단체 통합 운영을 경험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또 앞으로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이 어떤 방향으로 상호작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A. 통합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스포츠라는게 한 울타리에서 서로 배려할 부분이 생긴다는 것은 사실이다. 생활체육의 경우 관에서 예산지원 후 오는 체감이 확실히 빠르다. 경기 대부분이 관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선수들의 경기모습을 직접 관전하기 쉽고 스킨십 기회가 많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엘리트 체육은 예산지원의 효과가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효과는 분명히 엘리트 체육에 있다. 어느 게 더 낫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생활체육 저변이 확대되는 현 추세를 역행할 수 없고, 엘리트 선수 육성도 등한시 할 수 없다.
다만 누구나 체육을 접할 수 있는 시설 인프라의 구축과 소외계층 및 취약계층에 다가가는 서비스가 우선시 돼야 한다.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은 유기적 관계 유지를 통해 상생해야 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생활체육이 강조돼야 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엘리트 체육이 강조돼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생겼었다.
아쉽게도 장애인체육에는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못했지만, 장애인체육 현장에 직접 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했고 지원이 필요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장애인체육 분야야말로 가장 우선적으로 지원돼야 할 대상이다.
Q. 가정을 이루고 계속해서 학업과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남자들도 사회활동으로 가정을 등한시할 때가 있는데 가정주부로서 역할을 어떻게 해왔는지.
A. 혼자힘으로 완벽하게 모든 역할을 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모든 게 가능했다. 보통 일년에 3~6차례 해외 출장을 갈 정도로 바쁜 일상을 보냈는데 그 점을 남편이 잘 이해해 주고 외조해 줘서 큰 힘이 됐다. 다행이었던 것은 두 딸이 너무도 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줬다. 이제는 아이들이 다 커서 내가 활동하는 것을 한층 더 이해하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Q.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다. 앞으로 체육인으로서 해야 할 일과 목표가 있다면.
A. 선배들이 이끌어주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혼자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이 자리에 왔다. 후배들은 이런 시행착오들을 겪지 않고 원하는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자가 되고 싶다. 특히 여성들의 체육계 진출과 국제올림픽(IOC) 위원에 도전할 후배들이 있다면 길잡이가 돼주고 싶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 2hwangpo@kyeonggi.com
정리=박준상기자 parkjs@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