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스케치여행] 도담삼봉

시간의 풍화는 온갖 사유의 무늬를 지운다. 눈보라 삭풍이 발자국을 지우듯이, 시간은 강철이든 무쇠든 용광로처럼 삼킨다. 낙엽 쌓인 땅은 다시 흰 눈이 덮였다. 담양의 도담삼봉은 조선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 퇴계와 추사와 단원이 이 풍경을 심중에 담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정도전은 그의 삼봉이라는 호까지 이곳에서 취했다고 한다.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들인 남편봉우리의 좌우로 첩봉과 처봉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삐져 돌아앉은 처봉의 형상은 의미만으로도 귀엽다. 기실은 속이 뒤집어져 피를 끓이고 있으리. 무엇보다 이곳의 안내판에 걸린 김홍도의 도담삼봉은 눈 덮인 남한강과 멀리 운무에 뒤덮인 산 사이에서 선경을 이루었다. 가끔 이런 절경의 심취는 인생을 간소하게 살고파진다. 저곳 강가에서 고기나 잡고 살고픈. 인생무상은 버리고 살기위한 허무함의 질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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