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지는 달을 끌어서라도 꼭 해야 할 일은?

지리산 초입에는 ‘인월’이라는 고장이 있다. 남원 운봉 쪽에서 함양 쪽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왜 ‘인월’이라는 고장 이름이 붙여졌는지 그 일화를 잠깐 소개해 본다.

고려 말 국운이 크게 쇠퇴하고 국론은 분열돼 나라가 큰 혼란에 빠졌다. 남쪽에서는 왜구가 침범해오다가 결국은 남원까지 군대를 끌고와 진을 치고 백성들을 크게 괴롭혔다. ‘아지발도’라는 왜장이 군사 수만을 끌고 와 진을 치고 있었다.

고려 이성계 장군은 나라를 침입한 왜군을 물리치라는 왕의 어명을 받고 남원으로 오게 됐다. 이성계는 친구이자 부하장수였던 여진족 출신의 이지란과 함께 내려왔다.

진정한 종교화합떮상호존중 가치 실현

황산대첩에서 활 두 발로 왜장을 쓰러뜨리고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남은 왜적들과 싸우고 있었는데 하늘에 뜬 달이 지려고 하고 있었다. 승기를 잡고 있었고 조금만 더 싸우면 대승을 거둘 수 있는 터에 매우 안타깝게도 달이 지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왜구들이 또 다시 침공해 백성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니 참으로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간절히 원을 세우고 뜻을 다지고 있는데 구름 속에 감추어지려 하던 달이 다시 나타나 결국 왜적을 크게 물리쳤다고 한다. 지명은 이 일화을 바탕으로 끌인(引), 달월(月)을 써서 ‘인월(引月)’이라고 부르게 됐다.

가끔 달이 밝게 떠오르면 ‘나에게 지는 달을 끌어올려 붙잡아 두고서라도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하는 사유에 잠기곤 한다. 수행자로서 스스로의 본 성품을 밝게 깨달아 보는 것이고, 이 땅에 진정한 종교화합과 상호존중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소양을 두루 갖춘 훌륭한 21세기의 정조대왕의 후예을 육성하는 일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 갔을 때 심신이 피폐하여 상당한 곤경에 처했었다. 그 때 해남 대흥사의 대강백이요, 백련사 주지로 있던 혜장선사가 큰 도움을 준다. 차를 보내주고 사람을 보내 끼니를 해결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두 분은 사상적 교유와 나라 걱정에 서로 소중한 교분을 맺는다. 다산에게서 주역의 이치를 배우고 혜장선사에게서 불법의 가르침을 배운 것이다. 백련사 뒷산을 오가며 나라 걱정과 백성의 행복을 위해 두 분은 아름다운 교유를 이루었다. 불교의 스님과 유학자가 서로 배우고 도와주고, 녹차를 같이하며 아름다운 사상과 문화의 교유를 이루었던 것이다.

극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도와주었으며 고난한 백성들의 삶을 함께 가슴 아파했던 두 분이었다. 그리고서 불교와 유학을 배우고 토론하는 학문적 친구이기도 하였다.

혜장선사가 먼저 열반에 들자 다산은 크게 슬퍼하며 인생에 몇 안 되는 벗을 잃은 슬픔에 잠기어 시를 지어 바친다.

다산과 혜장선사의 통섭의 철학과 사상적 상호존중의 단면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본인도 채수일 한신대학교 총장과 함께 이 땅의 종교화합과 상호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그리고 이 땅의 문화 복지 르네상스를 이루기 위해 뜨거운 가슴을 서로 나누며 정조대왕의 사상과 뜻을 계승하고 이어나가고자 한다.

달이 환히 떠오를 때마다 합장하고 발원하느니, “우리의 본성은 저렇게 밝고 원만합니다. 무한의 진리공덕 생명입니다.

21세기 정조대왕의 후예 육성하는 일

그리고 멸하거나 따로이 생겨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저 보름달처럼 해탈열반의 가피와 광명을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두루 비추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아! 모두 중생업에서 깨어나십시오. 몸은 쉬어도 그 보리심은 잠들지 마십시오. 부처님의 무량공덕의 뜻이 저 보름달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바로 보시고 큰 지혜를 얻으십시오!”

인해 스님ㆍ용주사 문화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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