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대기업극장이 바로 서면 영화계, 관객 모두가 편안해진다

한국인이 영화 많이 본다는 통계

그대로 믿어선 안돼…

대기업 극장, 상영횟수 독과점 등

영화 만드는 젊은이들 자리 좁아

저예산으로 영화 만들어가는 현상

기특하다 못해 눈물겨워

통계의 영향력은 정말 대단하다. 통계는 사람을 웃게도 울게도 만든다. 하지만 통계를 맹신해선 안 된다. 1등이라고 무조건 좋아해선 안 된다.

3명 중 1등 한 것하고, 30명 중 1등 한 것은 다르다. 더 큰 문제는 동일한 사람이 3명에서 1등 한 것만 보도하고, 30명 중 20등 한 것을 숨기는 일이다. 통계가 거짓은 아니지만, 무엇을 알리고 무엇을 숨기냐에 따라 그 반응은 달라진다.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알리고, 불리한 통계를 숨기는 태도는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

얼마 전 CJ에서 외국의 잡지를 인용하여 전세계에서 한국인이 일년 중 가장 많은 영화를 본다는 통계를 알려주었다. KBS 9시 뉴스와 조선일보 등 주요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소개된 이 기사를 접하고, 난 우선 왜 CJ 가 이 정보를 알렸는 지에 어리둥절해 했다.

외국잡지에 이미 나왔으니 기자들이 취재하면 될 것을 왜 하필 CJ가 개입했을까? 곧바로 CJ의 홍보전략이란 걸 추정하게 되었다. 결국 영화불공정으로 질타를 받는 CJ나 CGV 입장을 언론들이 감싸주는 기사가 되고 말았다. 혹시 사람들도 그 통계를 CJ가 해석하듯, 한국 관객이 많이 늘어나고 영화를 많이 본 것이 오로지 CGV의 덕이라고 잘못 생각할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올해 한국영화의 최대 수확은 관객이 증가하여 2억명을 돌파한 것도, 한국인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봤다는 사실도 아니다.

올해 유독 50명에 가까운 신인감독들이 등장했다는 것과 그 영화들의 색깔이 정말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11월 중순까지의 통계를 보면 올해 등장한 신인감독들은 대략 45명이다. 전체 118편의 상영작 중에서 38%를 차지하고 있다. 3편 중 1편이 신인감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1분기 기준 영화산업 매출액은 1조1천45억원 규모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6% 증가했다. 그러나 2012년 기준으로 스태프 팀장(퍼스트)급 이하의 연평균 소득은 916만원, 팀장 아래 직급인 세컨드급 이하는 631만원이다. 한국 영화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지만, 영화 스태프들은 평균 76만원, 53만원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영화현장이 그런 곳인데도 젊은 제작자와 영화감독들, 스태프들이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가는 현상은 기특하다 못해 눈물겹다. <물고기> , <가시꽃> , <연애의 온도> , <공범> , <남자사용설명서> . <숨바꼭질> , <잉투기> , <잉여들의 히치하이커> 등 신인감독들의 수작이 나온 것은 한국영화의 희망을 보는 것 같다.

이들 가운데는 CJ나 CGV가 관계한 영화도 있다. 하지만 흥행한 영화는 한두 편이고 대다수 도산했다. 관객들의 선택이 아니라 순전히 극장의 판단이다. 이런 젊은이들을 좌절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 CGV, 롯데 등 대기업 극장들의 상영횟수 독과점과 교차상영, 예매불공정이다.

올 한해 대략 130여 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 중 관객들이 많이 봤다는 영화는 <설국열차> , <관상> 등 겨우 10여편이다. 오죽하면 송강호가 2천만 관객몰이의 주인공이 됐겠는가. 불공정을 계속 하는 한 그런 통계는 지속될 것이다.

특정 영화에만 몰리고 그 영화의 주인공이 뻔한데, 그중 송강호 같이 많이 하는 사람이 행운을 차지할 것은 당연. 만약 흥행영화들이 다양하다면 더 이상 그런 현상은 발생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나 프랑스가 CGV처럼 불공정을 한다면, 한국이 더 이상 1등은 못할 게 뻔하다.

그러나 그들은 1위를 하기 위해 절대 불공정을 행하지 않는다. 영화업계는 대기업이 싹쓸이 하는 판이 아니라 상생하는 판이고, 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를 보여주기 위한 판이라는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면서 장사하기 때문이다. 한국대기업극장이 이 원시상태의 불공정에서 벗어나야 선진국이 될 것이다.

상위 10%를 제외한 90% 내외의 120여편 영화들이 사장되었다. 한국영화산업은 누구를 위한 영화산업인가? 관객인가? 대다수 영화인들인가? 아니면 일부 대기업 극장인가? 자기들에게 유리한 통계를 갖고 한국영화산업의 실체를 은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당하고 공정하게 다수의 이익을 위해 극장이 서야하지 않겠나.

정재형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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