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칠맛 나는 추억의 맛!
중구 신생동 9-12번지 중국 음식점 신성루(新盛樓)에는 추억이 서려있다.
1963년 3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이 집에서 이웃 여중학교 동기생들과 짜장면과 야끼만두에 그 독하기 이를 데 없는 백알까지 몇 잔 마셨기 때문이다.
겨우 중학교를 졸업하는 애송이 주제에 마치 인생 끝에 다다른 것처럼 기고만장해서 술을 마신 작태가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럽고 코웃음이 절로 난다.
해삼주스, 부드러운 맛 ‘노인들 보양식’
옛날 신태범(愼兌範) 박사께서 종종 추천해 주시던 자춘걸(作春卷)은 말 그대로 이 집 명물이다. 이것을 먹으려면 미리 주문을 하든지, 아니면 좀 한가한 시간에 가서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웬만한 중국집에서는 시간이 걸려 메뉴에 잘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자춘걸은 우리 식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계란말이인데 알반대기 곧 계란 지단에 죽순, 해삼, 새우, 동구버섯, 양파, 부추 등등을 볶아 얹고 둘둘 말아 살짝 지진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는다. 맛이 봄날처럼 화사하고 황홀하다.
옌타이고량주에도 참 잘 어울린다. 지난봄을 의미하는 ‘작춘’에 두루마리 ‘권’이니 ‘지난봄을 말았다’가 된다. 요리 이름치고 매우 낭만적이다. 어느 집은 이 글자를 ‘炸’이라고도 쓴다.
회식 때 주문하는 요리로 전가복(全家福)이나 해삼주스(海蔘?子)를 빼놓을 수 없다. ‘집안의 평화와 복을 기원하는 음식’이라는 전가복은 송이, 표고, 전복, 해삼, 새우, 오징어 등이 들어가 육류를 피하는 사람들에게 좋다. 입 안에서 아주 부드럽고 얌전하게 씹힌다.
해삼주스도 이 집 것이 명성이 있다. 원래는 해삼에 돼지의 팔꿈치에 해당하는 다리 살을 넣어 만드는 요리라는데 요즘은 삼겹살을 주로 쓴다고 한다. 노인들이 먹기에 더없이 부드럽고 또 보양도 된다. 술안주로 뛰어나다.
대중적인 요리로 신성루의 대표적인 것이 난자완스(南煎丸子)다. 자랄 때 집의 애들을 자주 먹였다. 이 집 난자완스는 한마디로 살이 부드럽다. 다른 집에서 종종 습기 없이 뻣뻣한 것을 대하는데 그것은 속성으로 기름에 튀겨내기 때문이다. 신성루는 시간과 공력을 들여 지져낸다. 걸쭉한 전분 소스를 뒤집어 쓴 고기 지짐이 덩이와 버섯류들, 푸른 배추가 잘 어울려 보는 것만으로도 접시가 호사스럽다. 그 풍부한 맛은 닭고기 육수가 가미되어서 난다고 한다.
기호대로 이 집 요리를 하나 더 소개하자면 오향장육(五香醬肉)을 들겠다. 오향은 회향풀, 계피, 산초, 정향, 진피 등의 향이라고 하는데 신성루에서는 통 속에 든 팔각(八角)이란 것을 내보인다. 매우 독특한 향을 가졌다.
이런 향료를 넣고 간장에 돼지고기를 조려 내는 것이다. 적당한 두께로 저민 돼지고기와 그 밑에 깔린 오이, 곁들이 달걀 삭힌 것들이 단정하고, 오묘한 향과 함께 입안에서 가지런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이밖에도 삭스핀, 해삼탕, 동파육, 양장피, 탕수육, 깐풍기, 팔보채 깐소새우, 잡채, 냉채, 면보하 등등이 있는데, 중국의 수백 가지 요리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한 끼니 식사로 먹을 것! 우리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짬뽕 두 종류를 소개하고 이쯤에서 그치자. 짬뽕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정식 이름이 초마면(炒馬麵)이다. 어렸을 때는 초마면으로 불렀는데 이것이 왜 짬뽕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려나 신성루 짬뽕은 옛날부터 정평이 있었다. 맵지 않은 하얀 짬뽕과 붉은 고추짬뽕으로 나뉘는데 흰 짬뽕은 속을 자극하지 않고 부드럽고 구수하게 가라앉힌다. 매운 고추짬뽕은 다소 자극적이지만 국물에 무슨 열정이 배어 있는 듯 맛이 화려하다. 여기에 해산물 세 가지가 더 들어가면 이른바 ‘삼선’ 운운하는 음식이 된다.
애초에는 월병을 팔던 상점이었는데 6·25 전에 요리점으로 전업을 했다. 원 주인은 7,8년 전에 작고한 산동성 출신 이영은(李永恩) 씨였다. 현 장덕영(張德榮, 55세)씨의 외삼촌으로 이 분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며 장씨에게 음식점을 넘겨준 것이다. 그것이 1987년. 26년이 흘렀다.
그동안에 ‘신생반점’에서 ‘신성루’로 상호도 바뀌었다. 장씨는 북성동 중산(中山)학교를 나와 이내 이씨 밑에서 요리를 익혔다고 한다. 그 이력만 대략 40년 가깝다. 이런 숙수(熟手)가 내는 요리니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글 _ 김윤식 시인 사진 _ 홍승훈 자유사진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