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모든 이미지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집단적인 믿음과 소망, 이들의 간절한 기원의 뜻을 지니고 있는 기호이자 상징들이다. 그것들은 일상적 삶에서 쓰이던 신화적이고 종교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도상들이다.
일상에서 사용되던 다양한 물건들, 도상들은 근대 이후 ‘미술(ART)’이란 개념에 의해 위상이 바뀌었고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생산한 뛰어난 건물이나 물품들은 우리의 문화에 의해 ‘차용’되어 미술로 변형되었다. 우리가 지금 미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과거에는 모두 일상생활의 맥락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들이다. 일상생활의 맥락이란 인간과 세계의 관계에서 파생된 그 무엇으로서의 예술을 말한다.
그러나 20세기 이 땅에 수용된 서구모더니즘은 세계가 그다지 개입되지 않은 채 예술과 인간의 투명하고 자율적인 관계만을 이야기하는 면이 강했다. 이에 따라 한 문화권 안에서 기능하던 도상들이 지닌 삶의 욕망과 믿음의 체계는 망실되고 세계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졌다.
전통사회의 공동체 역시 급격한 와해의 길을 걸었다. 당연히 공동체의 와해는 그것에 기반했던 이미지의 몰락을 예고한다. 이웃과 공동체의 꿈과 희망, 소망을 약속해주던 전통사회의 이미지와는 달리 현대미술은 미술 자체를 사유하는 특정한 게임의 논리이자 미술계라는 한정된 제도 안에서 소통되는 언어를 만들어온 측면이 크다.
그런데 1950년대 중반, 박수근에 와서야 비로소 미술은 이웃의 삶에 주목하고 이를 형상화하는 사례를 남겼다. 물론 일상을 소재로 한다는 것은 인상주의를 수영한 일제식민지시기에서부터 주로 그려진 풍경이지만 그것은 단지 그림의 소재에 국한했었지 일상을 사는 이웃, 그들의 삶에 주목하는 경우는 박수근이 최초라고 본다.
이웃이란 내 옆집에 사는 사람, 공간적 인접성에 있는 이를 지칭한다. ‘공간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타인’이 바로 이웃이다. 박수근에게 있어 미술적 가치는 이웃의 고통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안과 내가 상처받은 그들의 이웃이라는 각성으로부터 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이웃의 고통을 생각하라는 전언을 던져주고 있다. 그는 단지 이웃집 사람이 아니라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친 이후에 살아남은 이들의 피폐하고 헐벗은 이들 모두를 자신의 이웃으로 생각하고 이들을 화폭에 담았다. 공간적 인접성을 떠나 사랑과 연민의 시선으로 전후 한국사회의 빈한한 일상과 그 풍경 속 인물에 주목한 이가 박수근이다. 그들의 외양은 다를지 모르지만 동일한 삶의 조건 속에서 같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동일자라는 인식이 그런 그림을 가능하게 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지닌 박수근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타인의 고통에 반응한 이며 그 반응의 형상화를 추구한 이다. 이것은 그의 그림의 키워드이자 연대(solidarity)의 방식이기도 하다. 1965년 작고하기까지 박수근은 변함없이 자신의 삶의 반경에 놓인 이웃을 관찰했고 나아가 당시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양식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당시 화단에서 박수근의 존재와 그의 그림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그가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의 작품이 지닌 중요성이 인정되고 평가되고 있다. 새삼 박수근을 생각해본다. 오늘 우리 미술계는 고통 받는 이웃과 암울한 현실의 삶에 대해 거의 방관하고 있다. 그것을 형상화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미술시장에만 관심을 쏟거나 자본의 힘에 휘둘리고 있다. 2014년 미술계는 부디 불우한 이 현실과 가난한 이웃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박영택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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