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류연복의 ‘괭이 갈매기 날아오르다’

새해가 밝았다. 환하게 밝았다. 나는 ‘밝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은 예부터 동아시아의 ‘밝달산’(白頭山)을 숭상했던 민족들이 좋아했던 말이기도 하다. 밝다는 것은 밝음이니 흰 백(白)을 생각할 수도 있으나, ‘붉은 산’이 ‘밝산(밝은 산)’과 이어지고 또 밝달산과도 다르지 않으니 그 산의 빛은 붉을 홍(紅)일 터. 밝달산은 홍산(紅山)이기도 했던 것이다.

붉다와 밝다를 ‘붉은 태양’이나 ‘밝은 태양’으로 읽어보면 그 뜻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상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침 해는 붉다.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새아침 새해가 밝아오는 것을 알아차린다. 붉음이 곧 밝음인 셈이다.

우리는 그 ‘밝음’을 밝을 명(明)이나 밝을 양(陽)에서도 찾는다. 명이 ‘환하게 밝히다’는 뜻을 가진다면 양은 ‘양지바른 곳의 밝은 볕’이다. 명이 신(神)과 혼융하면 신명(神明)인데, 그 뜻은 ‘흥겨운 신이나 멋’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뜻은 ‘신령스럽고 이치에 밝다’에서 왔다. 이때 신(神)은 내 정신이요 혼일 터이니, 신명은 쉽게 말해 내 안의 신이 참으로 밝다는 뜻이겠다.

신명을 우리말에서는, 신지핌, 뜨거운 떨림, 난장, 신바람 피움, 신이 오름으로 표현했고, 신에게 지폈다, 신에 들렸다, 신이 붙었다, 신령에 실렸다, 신이 올랐다, 신이 내렸다고도 했다. 굳이 굿판의 무당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 안에 밝음이 올랐을 때 ‘신이 난다’, ‘신났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동아시아의 밝달산 민족들이 춤과 노래를 즐겼던 이유는 바로 그 신명에서 유래한다.

류연복의 ‘괭이 갈매기 날아오르다’를 보면 수 없이 많은 흰 갈매기들이 사방팔방으로 날아오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없이 열린 푸른 창공을 비행하는 저 흰 갈매기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신이 오른 날개 짓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동해의 첫 섬 독도는 붉은 태양의 밝음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다. 그래서 새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섬이다.

백두산이 민족의 영산으로서 밝달산이라면 독도는 우리 민족이 가장 먼저 아침을 맞이하는 밝달산이다. 그리고 저 흰 갈매기는 그 바다 그 산을 휘돌아 자유를 누리는 우리 민족에 다름 아니다. 2014년 갑오년, 우리는 밝달 겨레의 웅혼한 심장으로 신명을 터트려 신이 오른 세계를 맞이할 일이다.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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