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각 외국인 근로자들에 ‘사랑의 의술’… ‘코리안 드림’ 돕는다
하지만 외국인 주민에게 국내 의료혜택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직장에서 외국인 직원 의료보험을 가입해주더라도 보장내용이 형편없어 스스로 지출해야 하는 의료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몸이 아파도 병원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다 병을 키우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일원이면서도 의료 사각에 놓인 외국인 주민에게 ‘사랑의 의술’을 베풀고 있는 단체가 있으니, ‘아주대학교의료원 의료봉사동아리’가 바로 그들이다.
■첨단 장비 동원한 ‘움직이는 종합병원’으로 의료혜택
아주대의료원 의료봉사동아리는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에게 의료적인 돌봄과 나눔을 실천하기로 뜻을 모은 의료원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의료봉사 단체다. 구성원은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약사, 직원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매월 첫번째 일요일 수원 인계동에 위치한 은혜와진리교회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활동이 예정된 날이면 회원들은 병원 주차장에 모여서 미니버스를 타고 아주대의료원이 보유한 검진버스를 대동한 채 교회로 이동한다. 수년째 이 교회에서 제공한 공간을 중심으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비타민과 진통제, 타이레놀 등 기본적인 의약품과 물품은 교회에 이미 구비돼있다.
현장에 도착하면 12시에 점심 식사 후 1시부터 4시까지 진료활동을 벌인다. 환자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면 봉사활동 내역을 정리하고 신규 환자와 기존 방문환자들의 특이사항과 투약 현황 등을 정리해 차트에 기록한다. 2차 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아주대병원의 사회사업팀과 연계해 무상 진료여부와 일정을 정한다. 수원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환자는 직장에 상태를 알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권고한다.
가장 환자가 많이 몰리는 진료 과목은 치과다. 설치에만 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이동식 진료장비를 사용해오다 지난해 1월부터는 동아리의 자체 재원과 병원과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교회 내 진료소에 고정식 치과 진료의자 2대를 설치하게 돼 진료활동이 훨씬 수월해졌다.
재활·물리치료도 호응을 얻고 있다. 재활의학과 의료진과 물리치료사가 함께 진료를 하며, 최근 저주파 전기신경자극치료장비를 도입했다. 외국인근로자들은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육체노동을 하고 있어 근육이나 관절 등이 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다.
또한 1년에 4회 정도는 아주대의료원이 보유한 검진차량 이외에도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으로부터 안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등의 진료시설을 갖춘 차량을 지원받아 특수진료까지 가능해졌다. 혈액검사 뿐 아니라 초음파 검사, 골밀도, 방사선 검사, 심전도 검사, 간단한 물리치료까지 하고 있어 ‘움직이는 종합병원’으로 불리운다.
아주대의료원 의료봉사동아리의 가장 큰 특징은 베트남에서 온 의료진이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아주대의료원은 지난 2009년부터 하노이 의과대학 출신 의사와 간호사를 대상으로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6개월에서 1년간 국내에 머무는 베트남 출신 의료진들은 봉사 현장에서 같은 나라에서 온 결혼이주자나 근로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모국어로 소통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진단과 정서적 안정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중국 다음으로 베트남 출신 수혜자가 많다.
수혜자들이 거주하는 지역도 다양하다. 수원을 비롯해 용인, 화성, 오산 등 주변 지자체는 물론 평택과 안양 등지에서도 이곳으로 몰려든다. 정윤석 회장은 “의료봉사 수혜자를 보면 대부분 동남아 국가 출신들이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페루, 칠레, 볼리비아 등 남미 지역은 물론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몰려든다. 국내 이민자들이 특정국가 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아주대의료원 의료봉사동아리의 시작은 지난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료봉사단체 ‘서울 그린닥터스’가 정윤석 회장에게 함께 의료봉사를 하자고 제안해온 것. 정 회장은 병원 내에 뜻이 있는 의료진을 모아 서울 그린닥터스와 함께 서울시와 경기도내 노인요양원과 장애인시설, 독거노인 가정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해왔다.
그러다 서울보다 경기도에 의료 손길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2007년 의료원 직원끼리 의료봉사동아리를 정식 창립했다.
창립 당시에는 10명 정도의 의사와 간호사 등이 시작했다가 점점 참여 인원에 늘면서 약사, 방사선사 등에 이르기까지 총 120명의 회원이 활동 중인 봉사단체로 성장했다.
그동안 이들의 손을 거쳐간 곳은 화성외국인복지센터와 장애인 시설인 용인 한울공동체, 이천시 한나요양원 등 다양하다. 하지만 수혜기관이 많다보니 의료봉사가 일회성으로 전락하거나 약만 나눠주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이 실질적인 의료적 도움을 주기가 힘들었다.
또한 외국인근로자와 결혼 이주민들이 의료혜택에서 소외되는 사실을 알게 되고부터는 수원 은혜와진리교회를 기반으로 외국인에 대한 의료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해외봉사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2008년에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지에 해외 봉사를 다녀왔으며, 2010년 아이티 지진참사 때에는 의료봉사단 10명을 현지에 파견해 1천609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지난해 총 15명의 의료진으로 봉사단을 구성, 필리핀 세부 인근 보육시설과 빈민촌을 방문해 현지주민 900여명을 진료하고 돌아왔다. 진료소 의료장비를 이용해 심전도, 초음파, 자궁경부검사 및 투약, 드레싱, 정맥 수액제 치료 등을 제공했다.
봉사단원이 개발도상국의 의료현장에서 만난 환자들의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고 한다. 목에 고름이 차서 혹부리영감이 된 아이, 팔이 부러지고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뼈가 어긋난 채 팔이 퉁퉁 부어있던 소년, 의료적 무지로 뱃속의 아이를 종양으로 의심해 병원을 찾은 임산부 등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던 이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봉사단 활동 중인 함정화 간호사는 “캄보디아에서 만난 안 된 한 신생아는 영양결핍으로 몸이 심하게 부어 의료진을 찾았다. 엄마는 젖이 나오지 않은데다 분유는 찾아볼 수도 없어 미음으로만 연명해온 상황이었다”며 “다른 산모의 젖을 구할 수도 없어 내 젖이라도 물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매 봉사현장에서 작은 도움에도 감사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배우는 게 많다. 나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나 욕심을 덜어내고 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주어진 바에 만족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삶의 활력이자 기쁨”
지난 9년간 아주대학교의료원 의료봉사동아리 회장직을 맡고 있는 정윤석 내분비대사내과 교수(50·사진)는 ‘의료봉사’란 단어를 이같이 재정의한다.
아무리 한달에 한번이라고 하지만 병원업무와 봉사활동을 병행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터. 다른 동아리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정 교수는 그는 오히려 환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공급받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사무실 벽에 걸려있던 소라껍질로 만든 목걸이와 서류파일에 정성껏 끼워져있던 편지를 꺼내며 말했다.
“지난해 7월 필리핀 세부에서 만난 아이들이 준 선물들이예요. 모든 봉사일정을 마치고 나니 현지 보육원 아이들이 감사의 표시로 준비한 공연을 보여줬어요. 비록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인 공연이었죠. 이 선물들은 공연장에 들어갈 때 아이들이 준 건데,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 교수는 학부 시절부터 의료봉사에 대한 막연한 소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2005년 부교수 승진과 함께 서울 그린닥터스에서 봉사활동 참여를 제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의료봉사에 투신하게 됐다.
그러나 효율성이 문제였다. 양로원이나 장애인시설 등을 방문하면 번호표를 나눠주고 준비한 의약품을 주는데 시간이 대부분 소요됐다.
정 교수는 “이마저도 1년에 1번꼴이라면 의학적 케어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방문 기관마다 환자별 의무기록을 작성, 어떤 의료진이 와도 환자의 병력을 파악하고 지속적인 케어가 가능하도록 했다.
동아리의 관심이 외국인 주민에게 쏠리게 된 계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국인들은 정부로부터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어요. 심지어는 노숙인도 국가로부터 케어를 받을 수 있죠.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은 아파도 의료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거든요. 의료보험이 있어도 보장 금액이 적어 ‘그림의 떡’이거든요.”
현재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적인 문제다. 그는 “아직 도움이 필요한 환자가 많고, 구입해야 할 장비도 많지만 재정여건이 넉넉지 못하다. 올해는 예산이 지난해의 8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해외에 의료진을 긴급 파견해야 하는 상황이 와도 재정여건상 나가지 못하는 사정이라 물질적인 후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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